한국 근대 형사재판 제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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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형사재판 제도사
  • 승인 2014.09.1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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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 속에서 형사재판제도 변화의 흐름을 느끼다
얼마 전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한국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분에게 질문을 받았다. 법학을 전공하고 이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정의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한국 재판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한국은 일본의 재판제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등의 질문이었다. 안타깝게도 대학에 입학한 이래로 10년을 넘는 기간 동안 법학을 공부하고 이를 직업으로 삼고 있음에도 한 번도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의 질문들이었다. 한참을 고민하고 생각해 봐도 답변이 어려워 그동안 나의 공부가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한국 근대 형사재판 제도사’는 우리나라 법률이 일본의 법률과 왜 유사한지, 형사재판제도의 형태가 언제부터 오늘날의 형태와 유사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는지 등에 관한 그간의 궁금증을 역사적 흐름을 통해 알려준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근대적 형사재판제도의 도입 과정을 갑오개혁 이전, 갑오개혁과 독립협회 운동기(1894~1898), 전제군주정 시기(1899~1905), 일제의 한국 주권 침탈기(1905~1910)로 나누고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적 재판제도는 갑오개혁기(1894~1895년)에 도입되었는데, 고소·고발권의 확대, 피의자 체포의 차별적 요소 폐지 등이 이루어지면서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양반을 우대하는 재판 절차가 상당 부분 개혁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개혁의 물살을 타고 독립협회 운동기에는 일반 백성들이 지방관으로 부임한 관찰사, 군수 등 관료들의 수탈 문제를 재판소에 고발하여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실제 관료들이 처벌받게 되는 사례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도 잠시, 사법권을 왕권의 하나로 보았던 관료들로서는 이러한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독립협회 운동이 좌절됨에 따라 다시 황제의 전제정치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1899년 이후 재판 기관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백성을 도리어 처벌하는 통치수단의 하나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부 백성은 조선에 주둔하는 일본군 사령부나 공사관에 부패한 관리를 처벌해달라는 요청을 하는 사건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였다. 이러한 요청에 따라 일본이 대한제국에 외교적 압력을 가하여 실제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기도 하면서 일본은 조선의 사법제도 개혁을 식민지 지배 수단의 하나로 삼게 된다. 일본은 위와 같은 수단을 통해 한국민의 호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었고, 재판제도 개혁을 통해 조선에 들어와 있는 미국, 프랑스 등 열강의 조선 치외법권을 폐지함으로써 그들이 일본의 조선 지배를 간섭할 수 없도록 배수진을 친 것이다. 즉, 재판제도의 개혁은 통감부 정책의 원활한 시행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자 선택이었다.

그 후 통감부는 재판제도 개선을 빌미로 한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법률을 제정·반포하고 새로운 재판소 운영에 필요한 형법, 형사소송법 등을 제정하였다. 이러한 법률은 근대 열강 국가의 제도를 반영한 부분도 있지만 대개는 일본의 법률을 그대로 본뜬 것이었다. 일본은 조선의 법률을 일본과 유사하게 제정함으로써 외관상 일본과 동일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것처럼 틀을 만들었고 이러한 외관을 통해 한국민이 일본인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호도하였다. 그러나 이는 조선을 철저히 일본의 식민지로 삼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사실은 재판 절차 등에서 태형의 적용,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의 제한, 상소권 제한 등을 통해 한국민을 차별하였다. 결국 개혁이라는 가면 뒤에 조선에 대한 침략과 통치의 목적이 있었다는 점, 새로운 법령과 제도 하에 한국민을 동화시키려 노력하는 외관을 보였지만 사실은 일본과 철저히 차별을 둔 제도를 시행했다는 점이 3·1 운동 등 해방운동을 전개하는 원동력의 하나로 작용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작용하였지만 근대적 재판제도가 우리나라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시대로 볼 수 있겠다. 광복 후에 헌법과 각각의 법률이 제정되었지만 당시 제정법들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만들어진 법률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법률의 제·개정이 이루어져 우리나라의 실상에 맞는 법률이 마련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으며 이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숙제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적 재판 제도 도입 및 정착 과정을 역사적 흐름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뼈아픈 진실과 향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면 이 책을 펼쳐보길 바란다.

<이혜미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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