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당장애인복지관 국밥 봉사 ‘꽃돼지원조국밥’ 최순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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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당장애인복지관 국밥 봉사 ‘꽃돼지원조국밥’ 최순례씨
  • 최지우
  • 승인 2014.09.1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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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같은 내 딸, 너에게서 희망을 본다
 

지적장애3급 딸 위해 나눔 실천 봉사 시작
내 것 나누는 삶 남은 생애 이어가고 파
장애우들 위한 평생 거주 공동시설 절실
지능지수와 사회성숙지수가 50 이상 70 이하인 사람으로 교육을 통한 사회적, 직업적 재활이 가능한 사람. 의학적으로 분류해논 지적 장애 3급에 대한 설명이다. 지적장애 3급인 딸을 키우며 겪어야 했던 세상 편견과의 싸움에서 이젠 마음의 평정을 찾고 아픈 세상을 보듬어 안은 보통 엄마의 특별한 삶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려 한다. 

북항에서  꽃돼지 원조국밥집을 운영하며, 딸이 매일 다니고 있는 하당 목포시 장애인복지관을 이용하는 장애우 300여명에게 국밥을 대접하며 명절 전 따듯한 마음을 전한 최순례씨. “우리아이가 매일 다니며 도움을 받고 있고, 장애를 안고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장애우들과 봉사자들에게 딸을 대신해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밝히며 ”텔레비젼에서  많이 가지지 않아도 가진 것을 나누며 마음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나도 봉사를 해보고 싶었다. 시중에서 흔하디 흔한 국밥 한 그릇에 고마워하고 감격하는  사람들을 보고 내 마음이 더 뿌듯하고 기뻤다“고 소감을 전했다.

강진 출신인 최 순례씨는 사업하는 남편과 함께 여느 새댁처럼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했지만 얄궂은 운명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엄청난 시련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똑똑하고 예쁜 딸을 낳아 기르며,  아낌없는 지원을 하던 초보엄마는 자랑스러운 자식을 향한 원초적인 열망과 소망을 빌며  둘째를 낳았다. 축복 이였던 둘째 딸 효선은  첫 아이와는 다른 모습 다른 성장으로 엄마의 가슴을 졸였다.

“우리 효선이가 태어날 때 보니 발가락이 6개 가진 장애아로 태어났다. 커 가면서 다른 아이들하고 많이 다른 걸 느꼈지만 시골에서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금처럼 좋은 세상이였으면 금방 병원에 데려 갔을 것이고  지금보다는 더 좋아 질 수 있었을텐데 하는 후회가 된다”고  했다.  중학교 때 발가락 수술을 받기 전까지 효선은 발가락을 숨기며 지내야 했다.

효선씨는 발가락 장애뿐 아니라 지적장애 3급으로 9살 정도의 지적수준이지만,  암기 능력과 컴퓨터 실력은 뛰어나다. 지난해 말  목포로 이주하며 목포시 장애인복지관에 나가기 시작했다 대 도시와는 다르게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동안 시달리던 우울증과 불안증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효선이는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어서야 지적 장애 3급이라는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었고, 특수교육을 받을 수 없어 초등학교, 중학교를 일반학교에 다니며 힘들어 했다.

"우리 효선이가 정상이 아니여서 친구들의 놀림을 받다보니 초등학교 1, 2학년 때 주눅이 들었다. 선생님도 지적장애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정확한 교육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3학년 담임선생님을 만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 선생님이 효선이를 딸로 여기며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며 효선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은인으로 여기고 있다. 전근을 가셔서 연락이 끊겼지만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오랫동안 간직해온 고마운 스승에 대한 마음을 내보였다.

남편의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최순례 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수원으로 이사를 하며 비로소 효선이에게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동사무소의 도움으로 복지관에서의 재활교육도 받게 했다. 하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도시에서의 생활은 최순례씨에게는 고행의 연속이였다. 대학생인 큰 딸과 효선의 뒷바라지를 위해 평일에는 대학 구내식당에서 일을했고, 휴일에는 김밥집 알바를 하며 휴일 없는 힘든 생활을 계속해 나갔다.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공부 잘하는 큰 딸과 특수교육으로 세상에 적응해가는 효선이를 보며 희망을 키워나갔다.

엄마의 보람이자 기둥인 큰 딸아이가 대학원을 마치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며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자 최순례씨는 남편의 권유에 따라 목포로 이주를 결심하며 지난해 말 언니의 부재로 인해 불안증과 우울증을 겪던 효선이를 데리고 내려와 식당을 오픈했다.

두 딸을 키우기 위해 고생했던 지난날을 이젠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찾은 최순례씨는 항상 생각하고 있던 나눔을 실천하며 또 다른 삶의 방향을 설정했다. 비록 정상적인 아이들과는 차이가 있지만 자신의 곁에서 항상 웃어주는 천사 같은 효선이가 있고, 똑 부러진 성격에 아픈 동생을 잘 챙기고 엄마의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하는 큰 딸이 만족스런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요즘이 더 없이 감사하기 때문이다.

“효선이와 이렇게 남은 생을 살아가는 것이 내 소원이다. 여느 장애아를 둔 부모의 심정처럼 나도 효선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살아 끝까지 효선이를 챙기는게 간절한 내 바람이다. 그리고 제도적으로 효선이 같은 아이를 위한 공동시설이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같은 형편의 장애인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평생 동안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시설이 있다면 아이들이 행복해 하지 않겠는가”라며 가슴 저 밑에 숨겨둔 말로 마무리를 했다.

최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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