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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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 배경재 교수
  • 승인 2014.10.02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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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책을 진짜 책으로 만들어내는 비밀

몇 년 전부터 국내 도서관에서 사람책 도서관(Human Book Library)프로그램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사람책 도서관은 도서관에서 물리적인 책을 열람하고 대출하는 것처럼 다양한 경험과 전문성, 노하우를 지닌 사람책을 지정된 장소와 시간에 만날 기회를 제공하는, 소통을 위한 도서관 프로그램이다. 덴마크의 청소년폭력방지 NGO에서 일하던 로니 아버겔(Ronni Abergel)이 2000년 덴마크에서 열린 뮤직페스티벌에서 창안한 것으로 세계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책의 근원은 결국 저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직접 사람책을 만나 그 사람의 삶이 녹아있는 표정과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사람책 도서관의 큰 매력이다. 이처럼 최근 사회가 다양화되고 서로의 다채로운 삶을 공유하고 대화하기 위한 매체가 필요해지는 시점에, 이 책은 스스로의 삶을 책이라는 가장 대중적인 매체로 어떻게 생산할 수 있는가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을 스스럼없이 전해준다.

“책을 쓰는 사람이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이라는 다소 과장스런 부제가 신경이 쓰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에서 전업 작가로서 생계를 위해 글쓰기를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한편(저자의 실제 수입을 공개하고 있다), 책을 쓰기 위한 마음가짐과 진정 책을 쓸 만한 삶에 대한 필요충분조건, 출판사 기획서 작성, 목차 구성, 제목 짓는 방법, 글 솜씨를 키우는 요령, 출판사와의 계약방법 등 책 기획, 출판, 홍보, 강연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출간 경험을 절친한 선배가 미주알고주알 알려주듯 친절히 풀어낸다. 출판사 편집자처럼 기획서를 쓰기 위해 제목과 기획 의도, 핵심 콘셉트, 예상 독자, 차별화 요소, 유사/경쟁서 분석, 주요 카피, 마케팅 포인트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구성방안을 알려주는 식이다. 저자는 전자공학부를 졸업하고 벤처기업에서 5년 가까이 지내다 인문사회 분야 저자로 삶의 진로를 확 바꾸었다. 2006년 이후 8년 동안 인문, 사회, 예술, 실용, 자기계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15권의 책을 출간한 경험을 갖고 있다.

사실 이 책에서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책을 출간한 이후 삶이 달라진 저자 9명에 대한 인터뷰’ 내용이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저자인 은수연씨는 친아빠에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9년에 걸쳐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으며, 심지어 초등학교 6학년 때 자신의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수술로 지우는 경험을 했다. 은수연씨가 쓴 책은 4년이 넘게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소식지에 연재한 글을 모은 것이다. 그녀에게 롤모델이 되었던 책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와 같이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일상을 묘사했던 책들이었다. 은수연씨는 자신의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할 때면 계속 눈물이 났지만, 눈물을 흘려가며 더욱 사실적으로 묘사할수록 그 일은 더 이상 그녀에게 고통이기를 멈추게 되었다고 한다. 삶을 책으로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주는 그녀의 조언은 매우 큰 울림을 준다.

“저는 책을 쓰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글을 쓰라고 하고 싶어요. 나 이제부터 책 써야지, 이러면 부담감 때문에 글이 제대로 나오지 않거든요.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나의 삶을 정리하고 그냥 계속 글을 쓰다 보면 그 글이 묶여 책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이렇게 써야 글이 살아 있을 수 있어요. ‘책’이라는 형식은 자본과 함께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녀의 조언처럼 책을 쓰려는 목적으로 삶을 살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삶을 살다보면 내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지 않으면 도저히 안될 것 같은, 내 이야기를 타인과 나누지 않는다면 내 양심에 미안할 것 같은 그런 때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책은 어쩌다 한번쯤 책을 내고 싶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그런 책은 아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라는 서명은 누구의 삶이든 책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만, 역설적으로 이 책의 내용은 설익은 책 쓰기의 호기심을 가진 범인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하는 것이 좋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묻는다. “당신은 책이 나올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오롯이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배경재 동덕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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