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읽은 ‘인간 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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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은 ‘인간 정도전’
  • 승인 2014.10.1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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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의 한 인물에 대한 평전은 흔히 그 인물이 살았을 때의 역사적인 배경과 성장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생과정에서의 중요한 변화, 그리고 그 인물의 살아온 선택의 방식 등을 정리하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삼봉 정도전의 일생은 여말선초라는 변혁의 시기에서 수많은 도전과 좌절,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고 있다. 그의 혁명가적 유형과 더불어 어머니의 출신이 미천하다는 신분제 아래에서의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한 인간적인 삶은 인간 정도전에 대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글이 탄생된 것은 새로운 지식을 전파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1973년 한영우 교수의 『정도전 사상의 연구』라는 단행본이 출간된 이후 학계에서는 정도전의 사상과 학문에 대한 적지 않은 저술과 논문이 간행되었다. 더욱이 얼마 전에 TV에서 방영된 ‘정도전’이라는 사극이 끝난 후라 주변에서의 관심도 적지 않았다.

저자는 부모, 학문, 출세, 유배, 유랑, 재기, 혁명, 건국이라는 8개의 장을 설정하여 정도전의 일생을 조망하였다. 시작은 아버지 정운경과 어머니 우씨에 대한 이야기로, 우씨가 우현보 가문의 비첩소생인 까닭에 정도전은 어린 시절부터 많은 놀림을 당했고 나중에 죽임을 당할 때도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 후 정도전이 성장하면서 배운 공부가 원에서 성립된 신유학으로 바뀜에 따라 이것을 자신의 필생의 업으로 삼아 정진하는 정도전의 모습을 그렸다. 19세 이후, 특히 22세부터 본격화된 관직생활은 34세인 우왕 원년에 이르러 북원의 사신을 영접하는 문제를 강경하게 거부함으로써 외교문제를 발생시켜 결국 유배를 가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여기서 정도전은 크게 낙담을 하였고, 유배와 유랑으로 점철된 3년간의 유배기간이 끝난 후에도 정도전은 관직에 복귀하지 못하고 다시 7년간 여러 곳을 전전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도전은 인간에 대한 회의와 마음속의 갈등, 낙담 등을 겪게 되었다.

정도전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준 것은 무장인 이성계였다. 우왕 9년 함주의 막사에 있는 이성계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면서부터 그와 막역한 친우가 되었고, 다음해부터 다시 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1388년에 위화도회군이라는 큰 정치적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후부터 정도전의 건국에 대한 열망은 표출되었다. 결국 여러 차례의 갈등이 빚어지다가 1392년에 조선왕조가 건국되는 과정을 보았고, 왕조가 개창됨에 따라 새로운 국가체제 완성을 위해서 『조선경국전』의 편찬을 이룩하였는데 그것은 주나라 때 언급된 재상중심적인 지배체제였다. 이 후 정도전의 죽음을 다루면서 저자는 실록에 적혀있는 내용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한영우, 최상용, 윌터 브루그만 등의 발언을 언급하며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였다.

이와 같이 인간 정도전에 대한 설명을 여타의 작가들과 다르게 저자는 인간의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시간별로 정리했는데, 그 정리하는 과정을 다음 두 가지의 독특한 방식으로 설정하였다. 그는 정도전의 전 인생을 설명할 때 본문에 반드시 삼봉집에 나와 있는 시구(詩句)를 집어넣어 표현하였다. 정도전이 인간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즉 유배기와 방랑기의 고통, 이성계와의 만남과 건국의 희망 등을 시의 형태로 제시한 것이다. 저자의 경력을 모르는 사람은 이 책을 ‘시를 통해서 본 정도전의 인생’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많은 시를 인용하였다. 또 하나는 프로이트, 귀스타브 르 봉, 나지오, 에릭 에릭슨 등 많은 서구 학자들의 이론 등을 거침없이 인용하였는데, 이는 정도전의 인간적 갈등을 묘사하는 데 일정한 도움을 준다는 의미에서였다. 이러한 저자의 방식은 문외한인 평자가 언급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하지만 하나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8장에 이르는 정도전의 일생 중에 사망이라는 인생의 종착역을 추가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단순히 실록에 정도전의 죽음이 이상하게 서술되었다며 왕조의 공식적인 입장을 설명하면서 그의 죽음을 억울한 것으로 치부하였다. 지금까지 정도전을 서술한 방식에 이어서 죽음까지도 좀 산뜻하게 정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그리고 인생과정을 8장으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시구를 중간에 집어넣은 것은 상당히 독특하고 재미있었지만 그 시구가 모두 다 적절한 인용이라는 판단에는 다소 부정적이다. 특히 정도전의 심리들을 설명하기 위해 문장 중간 중간에 삽입한 서구 학자들의 심리학적인 저술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볼 때 적절하지 못한 면이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형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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