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일식전문점 수담 김청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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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일식전문점 수담 김청용대표
  • 최지우
  • 승인 2014.10.2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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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향한 일편단심 지역경제 발전으로

섬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보고 배운게 바다였다. 철썩이는 파도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고, 깨복쟁이 친구들과 갯벌에서 뒹글며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어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을까봐 어머니는 바다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했지만 즐거운 추억을 쌓으며 지냈던 섬의 알싸한 갯내음은 평생 잊히지 않는 고향의 향기였다.

“바다를 접하며 살다 보니 바다와 연관된 사업구상이 떠나질 않았다. 군대제대 후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바다와 관련된 사업을 하며 이지역의 수산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우리지역은 많은 수산자원이 있지만 자원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 항상 아쉽고 안타깝다. 이 지역만의 특산품 개발과 관광 활성화로 지역경제를 위한 발로를 찾아야 할 것이다” 며 남다른 바다사랑을 엿볼 수 있는 다부진 말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김청용 대표는 이 지역 수산산업의 대표 주자다

진도 가사도 출신으로 양식업에 꼭 필요한 스치로폼 부자를 비롯한 각종 시설물 설치사업과, 생선포장에 꼭 필요한 스키로폼 박스 생산으로 지역경제발전에 큰 획을 그으며, 자수성가의 표준모델로 회자되고 있는 김청용대표의 인생 여정을 함께 했다.

어린 시절 좀 더 폼 나는 일을 하며, 섬사람 탈피를 원했던  어머니는 바다에서 노는 것도 금지시킬 만큼 싫어했다. 섬에서 초등시절을 보내고, 목포에서 중학교를 마친 김청용대표는 어머니 손을 잡고 인천으로 유학을 떠났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 다른 인생 살기를 원했던 어머니의 바램은 김대표가 군복무를 위해 목포로 내려왔고, 제대 후 인천에서 친척이 경영하던 스치로폼 제조 회사에 취직을 하며, 무산됐다. 

김 대표는 “어머니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내 운명이지 싶다. 여직 살면서 바다를 벗어나 본적이 없으니 말이다. 모든 생활권이 다 바다가 있는 곳 이였다. 군 제대 후 처음 일을 시작한 곳도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하는 곳 이였다. 전국의 바닷가와 양식장을 찾아다니며 양식장에 꼭 필요한 시설물인 스치로폼 부자 설치 영업을 했었다. 양식장 위에 띄어 놓는 스티로폼 부자는 사람이 물 위에 서서 양식장을 관리 할 수 있는 발판 같은 것으로  양식업에는 꼭 필요한 것이다. 부자뿐 아니라 양식업이나 어부들에게 꼭 필요한 부자재의 제조와 판매도 하며, 내 사업에 대한 꿈을 키웠다.”며 바다와의 운명적인 인연에 대해 설명했다. 

실제로 김대표는 스물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다.

그 첫 시작은 다니던 회사의 제3공장이 무안에 세워지면서 총 책임자로 다시 목포로 내려오면서 부터였다. 수산물기자재 사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곳에 스티로폼공장을 세우면서 목포, 무안, 신안의 어업 종사자들에게 새로운 작업 환경을 제공했다. 28살 되던 97년 50%의 지분을 매입 경영 독립을 하였고 매년 추가 지분 확보로 2005년 완전 독립을 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경영에 돌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사업 여정이 순탄한것 만은 아니였다.

사업을 막 시작했던 97년 어린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다가왔다; 특유의 뚝심과 성실성, 시장경제를 꿰뚫어보는 본능적인 감각을 발휘하며 높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뛰던 김대표 앞에  IMF라는 초유의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도산을 했고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김대표에게는 쓰나미 같은 속도의 좌절과 슬픔의 첫 시련이였다

위험이 곧 기회이며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을때 나온다는 옛 말처럼 김대표의 진가는 IMF를 겪으며 나타났다.
원자재 거래처 대표들이 열심히 사는 젊은 사람은 도와주어야 한다며 넉넉치 않은 김대표의 자금사정을 고려해 신용으로 거래를 해주었고, 남들보다 더 많은 자재 남품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 다닐때 거래하던 원자재 남품 담당들과 맺어논 인연의 덕을 많이 봤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다보니 좋은 결과가 있었던거 같다. 그 덕에 우리 회사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상했다.

김대표는 평소 신조대로 회사 직원들이나 사업상의 고객들과의 만남을 인연의 시작으로 보고 소중히 한다. 물건을 납품하고 대금 회수를 하지 못한 시골 어가에 대해서도 때를 기다리며, 손해를 감수한다. 좋은 시절이 와 언젠가는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젊음의 상징인 군 복무시절의 인연 또한 전의경 모임을 통해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전남전의경회를 창립해 후배들을 챙기고 목포발전을 위한 오피니언 리더로 성장 할 수 있게 뒷받침을 해주고 있다.

이제 김청용대표는 수산업 관련 기자재 사업을 하며 느꼈던 목포수산 유통과 환경에 대한해 남다른 고민과 애착을 가지고 목포 수산업 발전을 위해 남은 시간을 보태고 싶은 큰 꿈을 꾸고 있다.

김대표는 “우리지역은 많은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다. 단순 유통이 아닌 수산업 가공을 발달 시켜 고 부가가치를 창조해야 한다. 수산산업의 활서오하 만이 더 잘사는 지역으로 나아가는 길이다”고 강조했다.

열정과 높은 기개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중요한게 사람임을 느끼고 실천하고 있는 김청용대표의 또 다른 성공에 기대를 걸어본다.

최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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