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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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4.10.2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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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나는 빵을 대단히 좋아해서 한때는 하루에 두 끼 정도는 빵만 먹어도 충분했다. ‘앙꼬 없는 찐빵’이란 표현처럼 내게 빵이란 무엇보다 ‘앙꼬’였고, 그걸 둘러싸고 있는 껍질은 이차적인 것이었다. 반면 이 책의 저자는 그건 껍질이 아니라 ‘살’이라고 말한다.

빵이란 무엇보다 그 ‘살’을 뜻한다고. 그에게 중요한 것은 빵의 그 살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균들이고, 그 균들이 가장 발효되기 좋은 조건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곰팡이를 직접 먹어보기도 하고, 낡은 고택을 찾아다니기도 하며, 균이 좋아할 물을 찾아 이사를 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그는 “균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

존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점이 하이데거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균들의 부름을 받고’ 멀리 가쓰야마라는 촌구석의 낡은 집을 찾아간다. 에도시대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그곳은 또한 염직, 양조, 죽세공 등 다양한 장인들의 전통과 문화가 살아 있는 곳이다. 거기에서 그는 빵을 만드는 장인으로 살고자 한다. 소생산자/소상인으로서, 이웃한 소상인과의 유대로 요약되는 소상인의 공동체를 어느새 실험하고 있다.

어쩌면 아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일 이런 관계가 새로운 가능성을 갖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인터넷과 SNS로 멀리 떨어진 이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생산자의 연합이라고 요약될 이런 공동체적 전망은 최대한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만드는 이른바 DIY(Do It Yourself)의 정신과 이어진다.

빵과 균과 빵집, 그리고 돈과 장인과 인간에 대한 이 책은 제목처럼 <자본론>에 대해, 이윤과 착취에 반하는 경영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부친이 권해서 빵집을 시작하며 읽어보았다는 <자본론>에 대해 명시적인 ‘강의’까지 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책은 <자본론>을 쓴 맑스보다는 기계제 대공업에 반대하여 장인적인 문화를 예찬했던 윌리엄 모리스와 가깝고, 베를린 대학의 초청에 대해 “우리는 왜 시골에 거주해야 하는가?”라는 방송연설로 거절의 뜻을 표현했던 하이데거와 가까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이 글을 쓴 저자보다는 오히려 ‘균’임을 안다면, 생명체란 균이라고 불리는 미생물들의 공생체고, 지구란 미생물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임을 주장했던 린 마굴리스와 가장 가까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순환’이라는 말이다. “자연계에서는 균의 활약을 통해 모든 물질이 흙으로 돌아가고, 살아 있는 온갖 것들의 균형은 이 ‘순환’ 속에서 유지된다.” 이를 그는 ‘부패하는 경제’라는 말로 표현한다. “자연계의 부패하는 순환 속에서” 우리는 필요한 먹거리를 얻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발효’ 내지 ‘숙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부패하는 순환의 흐름을 따라가며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 바로 부패하는 경제이고 순환의 경제다.
 
달리 말하면, 필요한 자원과 물자가 돌고 돌아 적절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 자연의 힘에 거스르지 않고 그 생명의 흐름을 따라 생산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농사짓는 사람이 계속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도록 제값을 주고 재료를 사고, 노동력이나 상품가격을 억지로 낮추지 않으며, 생산한 빵 역시 제값을 받고 팔아야 하는 것도 이를 위한 것이다.

이는 부패할 줄 모르는 돈, 이윤을 위한 생산과 대비된다. 많이 팔기 위해 가격을 낮추고 그 가격에 맞추기 위해 재료값, 임금을 깎고 재료나 상품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방부제를 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빵집 주인의 경제학’이라고 할 만한 것을 담고 있다. 빵을 만들기 위해 들여다본 균들로부터 그는 빵집의 경영이나 경제 전반을 보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그것은 그저 소박하다거나 몽상적이라는 말로 묵살할 수 없는 단단한 일관성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가 점점 생산에서 분리되어 파생상품의 구름을 타고 모든 활동을 이윤으로 빨아들이는 시대에, 그래서 자본의 성장이 더 이상은 생존조건의 성장과 무관하게 되어버린 이 시대에, 직접적인 삶에서 얻어낸 이런 공동체의 경제학이야말로 자본의 구름에 올라타지 못한 우리들에겐 진지하게 숙고해 보아야 할 어떤 것을 담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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