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는 태원여객 박봉남 실버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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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하는 태원여객 박봉남 실버기사
  • 최지우 기자
  • 승인 2014.11.20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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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 없어 마음과 정성 나누는데 이제 뭔 봉사 인가요~”

 
세 아들을 키우기 위해 아버지는 대형버스 운전을 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배우지 못한 자신의 한을 풀기 위해 아이들만은 공부 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 할 것을 결심한 아버지의 노력으로 세 아들은 번듯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소속된 곳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제는 자식들 자랑하며, 그 동안 열심히 일한 보상으로 편한 노후를 펼칠 나이가 되었지만 예순일곱 초로의 아버지는 은퇴 후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이제는 즐기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다시 운전대를 잡고 알찬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혜택을 남들과 나누고 싶어 한 달에 두 번 잊지 않고 봉사를 하며,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화제의 인물. 태원여객 배테랑 실버기사 박봉남씨가 그중인공이다.
그는 매월 두 번 상동복지관 점심봉사와, 밥퍼 봉사를 꾸준히 하면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자원봉사자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이 시간과 노력을 나누는 봉사로 더 행복하고 값진 노년의 일상을 보내고 있는 박봉남 기사는 행여 자신으로 인해 회사에 누가 될까 고민 이 걱정하는 순박한 심성의 소유자다.

3번 버스를 몰고 있는 박봉남씨는 금호고속 퇴직 후 태원여객에 계약직으로 재입사해 매일 행복한 마음으로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고 있다.

“내가 뭐 별거 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나오는게 맞는지 모르겠다. 남들처럼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재주가 많은 것도 아니여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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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훌륭한 많은 사람들이 직접 밥을 푸고, 노숙자들의 시중을 드는 것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고 나도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라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매일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봉사는 이 감사하는 마음을 내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퇴직 후 집에 있는 동료들을 보면 다들 힘들어하고 몸이 아파오더라, 하지만 나는 건강하게 매일 일 할 수 있는 직장이 있어 행복하다. 이렇게 일 할 수 있게 해준 사장님께 뭐라 말 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낀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신안 압해도 가난한 농가출신인 박봉남씨는 먹고 살기 위해 운전을 배웠고, 군대 시절 운전병으로 근무하며 운전이 자신의 적성에 딱 맞는 직업임을 깨달았다.

군 제대 후 지입 택시를 운행하며 9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며, 장남의 의무를 다했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매일 고단하게 일을 해도 생활을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역부족임을 느꼈고, 앞날의 희망을 위해 분가를 결심했다. 가진 것이 없었기에 월세 방 한 칸을 얻어 아이들과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고 가난했던 젊은 날을 회상했다.

한시택시가 생겨나면서 수입이 줄어들고 택시 운행이 힘들어지자 지입차를 처분한 박봉남기사는 아이들의 교육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태원여객에서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그시절이 그에게는 몸은 고단했지만 안정된 수입으로 세 아들을 교육시키며, 자식 키우는 재미를 느껴가는 시기였다.

전형적인 현모양처형인 아내는 사춘기 아이들의 화목한 가정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줬으며, 지금도 아이들의 엄마 덕에 삐뚤어지지 않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고 감사할 만큼 아이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다.

순종적이고 공부를 잘했던 아이들의 대학공부를 위해 그는 또 다른 결심을 하게 된다.
“정말 만족하고 고향땅에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어 좋았지만 당시 태원여객은 아이들 고등학교까지만 학비가 지원 되었었다.

대학학비 지원을 해주는 금호고속으로 이직을 결심을 했고, 어쩔 수 없는 선택 이였다”며, 회사에서도 박봉남 기사를 보내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고심을 했지만 규정 때문에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금호고속에서도 모범 기사로 인정받으며, 세 아들을 번듯한 대학 공부를 마치고 사회인으로 자리 잡아 제 몫을 하게 만들었다.

아들들은 아버지가 이제는 편히 쉬면서 여생을 즐기길 바라지만 그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지 못했기에 바라지도 않는다고 했다.

아들이 무언가를 해줄 때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부모노릇을 제대로 못했는데 무슨 염치로 아이들에게 뭘 바라겠는가 하는 심정에서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퇴직 후 뭔가 해야 할 일을 찾던 그에게 생가지도 못한 행운이 찾아왔다.

젊은 날 몸담았던 친정 같던 태원여객의 은퇴자 프로그램 일환으로 다시 입사를 하게 된 것이다.

건강하고 성실한 그에게 딱 맞는 일자리인 것이다.  운전대를 잡으면 모든 근심과 피곤이 사라지고, 행복하고 즐거웁다는데 아이들도 말릴 수가 없었다.

장성한 세 아들은 이제 남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서 아버지를 응원하며 도움을 주고 있다.

항상 성실함과 자신들을 믿어준 고마운 아버지에게 아들들은 진심을 다하는 효성으로 공경하고 있으며, 아버지를 믿어주고 있다.

항상 감사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박봉남기사는  가슴 벅차게 행복한 나날 속에서 오늘도 시민들을 위한 운전대를 잡으며, 자신의 정성을 나눠줄 이름도 모르는 그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빼놓지 않고 있다.

위를 바라보지 말고 자신보다 더 못한 아래를 바라보고 사노라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감사로 여겨질 것이라는 박봉남 기사의 인생철학은 쥐어지지 않는 욕심으로 하루를 고달프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최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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