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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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4.12.1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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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집합행동을 위한 공유 지식

2013년 12월 서울의 한 사립대학에 게시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는 한국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철도 민영화, 밀양 송전탑 건설, 국정원 대선 개입 등의 문제를 거론한 이 대자보는 타 대학, 중고등학교,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한동안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현상이 되었다.

많은 대학생들이 공감을 하고 게시된 대자보에 댓글을 달고 릴레이 대자보를 이어가게 된 주된 이유는 이 대자보를 통해 자신들이 다원적 무지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다원적 무지는 사람들이 서로의 견해를 밝히지 않아 자신의 견해가 다른 사람들의 견해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상태를 말한다.

한국사회가 처한 여러 가지 문제 속에서 안녕할 수 있는가라는 한 사람의 질문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공통의 문제 제기를 하게 만든 것이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그 중에서 게임이론을 연구한 저자는 시위와 같은 집합행동이 성공을 거두려면 조정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내가 시위에 참여할 것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고, 다른 사람들이 참여할 것이라는 것을 내가 알고, 그러한 사실을 모두가 공유할 때 비로소 위험을 무릅쓰고 시위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조정의 문제를 해결해서 성공적인 집합행동을 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공유 지식이다. 공유 지식은 일종의 메타지식으로 ‘내가 안다는 사실을 상대가 알고, 상대가 안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나도 알고 상대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가 아는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단지 메시지를 전달하고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그런 메시지를 공유하고, 참여하고, 연합하고, 공통의 의식과 믿음을 만들 때 비로소 조정된 행위가 가능한 것이다.

공유 지식을 만들어내는 좋은 방법은 공공 의례에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이다. 왕의 행차, 집회, 매스컴용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사람들은 공통의 메시지를 공유하고 사회적 일체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공간적으로 사람들이 서로를 마주 보고 대화할 수 있도록 배치하는 것도 공유 지식을 창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런 이유로 외국의 시청사 중에는 원형으로 의사당을 설계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최대한 마주치도록 하고 서로가 서로를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 것들이 많다.

공공 의례를 공유 지식을 산출하는 사회적 실천으로 보게 되면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이 단지 사실을 알리고 타인에게 정보를 주는 것만이 아니라 사실을 공유하고, 참여하고, 공통의 의식과 연대감을 구축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공식 행사에 참여하면서 정보를 주고받고 공통의 인식과 감정, 더 나아가 연대감을 발전시키며 이것이 결국 집합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시카고대, 뉴욕대에서 게임이론을 가르치고 현재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정치학과 교수로 있는 저자는 2001년에 출판된 이 책을 통해 공유 지식의 산출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다양한 현상들을 설명하는데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리고 단지 현재의 상황뿐만 아니라 과거 그리스의 민주주의 제도, ‘키바’라고 불리는 미국 남서부 지역에서 발견되는 원형 구조의 선사시대 건축물, 16세기 영국의 왕실 행차나 아프리카 부족의 의례, 원형극장을 모형으로 한 프랑스 혁명기의 자유페스티벌 등이 엘리트들이 공공 의례와 공유 지식을 형성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권위를 정립하는 메커니즘이라고 밝혔다.

또한 공유 지식은 미국의 슈퍼볼 경기에서 수많은 시청자들이 텔레비전 광고에 노출되어 공통의 욕구와 인식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해 대량 수요가 창출되는데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은 2008년 촛불 시위가 한창일 때 번역이 의뢰되었다고 한다. 정치학을 전공한 번역가는 당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서울 광장에 모이게 된 과정을 이 책이 명료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고 생각하고 번역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과 그 이후의 국론분열과 이념대립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재 상황에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어떻게 합리적인 공공 의례와 공유 지식을 통해서 사회적 합의와 통합을 이룰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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