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주)우진건설, 대영개발 윤양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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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주)우진건설, 대영개발 윤양진대표
  • 최지우 기자
  • 승인 2015.01.2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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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학생, 졸업장 받을 수 있어요'
 

48년만 초, 중, 고입검정고시 거쳐 고등학교입학
장학금 기부와 재능기부 지역사회 오피니언리더
대학진학, 자신역사 기록계획, 꾸준한 나눔 실천

회갑! 육십갑자 중에 태어난 해가 돌아왔다는 뜻으로 그동안의 생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회갑을 앞두고 어린 시절 중단했던 학교 공부를 시작, 자신과 같은 처지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기부하며 신세계를 살고 있는 영암 우진건설 윤양진대표(제일정보고등학교 2학년)의 파란만장 인생스토리가 전하는 새해 희망 메시지가 화제다. 파평윤씨 35대손임을 잊지 않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나라를 위해 일했던 윗대 조상님들과 같이 관직에 나가 나랏일을 하고 싶었다. 가난에 찌들려 살면서도 언젠가는 꼭 성공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희망과 함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식의 존경을 받는 어버이가 되고 싶었다.

또래 친구들보다 일찍 철이 들어 집 돌아가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 매일아침  학교에 가는 어린 그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께 부름을 당하고 못내 다시 집으로 되돌아 와야 하는 몇 번의 가슴 아픈 경험은 그의 학교생활을 더는 지속하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그는 5년간의 짧은 학교생활을 접고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못한 인생을 살았다.

48년 강산이 다섯 번쯤을 바뀌었을 그 긴 시간동안 배움에 대한 열망은 잊을만 하면 꿈속에 찾아와 어린 시절의 슬픈 전설을 끄집어 내어놓곤 했다. 책가방 메고 학교 가는 꿈을 꾸던 밤이면 저 깊은 내면 속에서 꿈틀거리던  배움에 대한 아쉬움에 잠을 설쳐야 했다. 그래도 팔자려니 하고 학교는 더 이상 그에게 거론의 대상이 아니였다. 20여년을 건설업계에서 시추자격증, 거푸집자격증을 가지고 일했지만 아무 문제도 없었고, 사업도 잘 되는 편이였다. 2013년 관급공사를 맡기 위한 자격요건에 초급자격증이 필요하단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배운 것은 없었지만 타고난 성실함으로 열심히 일하던 그는 차근차근 하나씩 기술을 익히고 자격을 취득해왔다. 지하수 기술인력 법정교육, 119 수상구조대, 굴삭기 운전기능사, 온수온돌기능사, 거푸집기능사, 위험물안전관리자격, 시추인정기능사, 온수보일러시공관리자 등 학력대신 가지고 있는 자격증들이 학교 졸업장 한 장 없는 그에게 큰 힘 이였고, 졸업장 이였다.  하지만 그의 인생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초급자격증 자격이 되기에 기술원협회에 발급요청을 의뢰했었다.  2년제 대학을 나와야 초급자격증의 변경 자격이 주어진다고 했다. 앞이 캄캄했다. 비록 초등학교 졸업장은 없지만 일에 대한 자격증도 취득했고 사업을 잘해 왔었는데 남들에게 평범하기만한 졸업장이 내겐 커다란 의미로 넘을 수 없는 난관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이 산다는 것은 한을 품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록 초등학력밖에 가지지 못했으나 한 평생 열심히 일해 실력만은 인정받은 그였다. 하지만 ‘학력미달’이라는 법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평생의 한으로 자신을 위축되게 했던 학교를 다니기로 결심하고 2013년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중입 검정고시와 고입검정고시를 거쳐 지난해 목포제일정보고등학교를 찾아와 당당하게 입학원서를 썼다.

그렇게 꿈속에서 책가방 메고 가던 학교는 이제 현실이 되어 매일 꿈꾸듯 학교를 간다.  기성회비가 없어 갈 수 없었던 아픔이 화인처럼 새겨진 그는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청록청소년육영회를 통해 불우 청소년들을 돕기 위한 장학 사업에 동참했다. 지난해 10월 28일 청록청소년육영회(전남 지회장 김성복)에서는 어려운 처지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초 중 고 학생들에게 1,7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하며 격려하는 행사를 가졌는데, 윤양진대표는 이 날 우수 회원으로 공로패를 받았다. 또한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 총학생회 부회장을 맡아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성금마련을 위한 떡국판매에도 앞장서서 그 수익금을 방송국에 전달하기도 했다.

영암에서 상하수도 공사와 건설사를 운영하며 지역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의용소방대 수석부대장을 맡아 불이 나면 출동하는 봉사부터, 영암 시가지 청소나 풀베기 등의 환경정화활동, 상수도공사 그리고 보일러보수 같은 일로 이웃과 더불어 살고 있다. 젊은 시절 형제를 키우면서 윤양진대표는 술 담배로 힘든 생활을 잊고자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바로서지 않으면 가난이 대물림 할 것이란 아찔한 생각에 술과 담배를 끊고 가정에 충실한 가장이 되었다.

대대로 벼슬을 하며 관직생활을 하던 조상들을 생각하며 자신은 비록 배우지 못하고 공무원으로 살진 못하지만 자식 대에서는 공무원으로 착실하게 나랏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였다. 윤양진대표는 “내가 어영부영한 생활을 한다면 자식들이 뭘 보고 배울 것인가. 내가 모범을 보여야 아들들이 올 바른 정신으로 건전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에 독한 마음먹고 살았다. 다행히 아이들이 착하고 바르게 커주어서 고맙게 생각 한다” 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는 초등학교를 그만두고 광주에서 화물차 조수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도 부모님 원망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 노환으로 입원 중 돌아가신 어머니한테 끝내 학교 다닌다는 말을 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봉사를 다니다 보면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만나는데, 힘들게 자식들 키워 내보내고 외롭게 사는 모습을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목이 메일 때도 많다. 내년엔 그는 대학 입학도 꿈꾸고 있다. 대학교 토목학과에 진학하여 그가 가지고 있는 기술관련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고 자격증을 취득한 후, 명실상부 전문가로 거듭하고 싶다.

윤양진 대표는 “공부는 계속 할 것이다. 그리고 주위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는 삶도 계속 할 것이다. 좀 더 노력해서 더 많은 장학금기부도 하고 싶다.”고 계획을 밝히며 “마음이 정리가 되면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얘기를 정리해 남기고 싶다. 몇 번 시도해 봤지만 눈물이 먼저 나와 포기했다. 좀더 시간이 지나면 덤덤하게 내 이야기를 쓸수 있지 않겠나. 파란만장 내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는 또 다른 꿈도 밝혔다. 늦었다고 생각 할 때가 가장 빠른 때임을 실천으로 증명하고 있는 윤양진대표의 새로운 인생여정에서 또 다른 희망을 본다.

최지우기자( tm01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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