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제대로 알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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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제대로 알자 <3>
  • 정거배 기자
  • 승인 2015.02.0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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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부상, 서방세계의 예측 모두 빗나가

중국을 제대로 알자 <3>

중국의 부상, 서방세계의 예측 모두 빗나가
명나라의 조선 파병, ‘일본을 국경 밖에서 저지’   

1992년 8월 한국은 중국과 수교한 이후 중국이 세계 최대 교역국이 됐다. 한국 수출에서 중국은 미국과 일본의 수출규모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지난 2013년 기준 26%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는 80만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으며 2만개가 넘은 한국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200여 년 전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군인이었던 나폴레옹은 “잠자는 사자 중국을 깨우면 세계가 진동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필자는 지금 ‘오늘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중국이 걸어온 역사를 현재의 관점에서 되짚어 보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이해하고 전망하기 위해서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의 단편적인 시각이 아니라 세계사적 관점에서 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 나라를 알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 뿐 만 아니라 문화를 알아야 하고,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그 나라 역사를 알아야 하기에, 연재 앞부분에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외국인이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게을리 한 채 한국어 공부만 열중하게 된다면 대문 앞에 서서 “개조심씨 계십니까?”라는 해프닝이 벌어질 것이다. 지난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도난이나 외부인 침입 등을 막기 위해 집 마당에 개를 키웠고, 집 대문에는 “개조심”이라는 문구를 쉽게 볼 수 있었다. 한 나라의 문화에 대한 몰이해는 바로 이런 해프닝을 낳을 것이다.

방송 <슈퍼 차이나>, 첨단산업 강국 예고
최근 KBS에서 신년특집 7부 작으로 ‘슈퍼 차이나’를 제작해 내보냈다. 방송 ‘슈퍼 차이나’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오늘의 중국이 G2국가가 된 것은 단순히 생산과 소비, 인구 등 하드웨어적인 면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 외 각 방면에서의 저력 등 ’소프트 파워 중국‘을 분석했다. 짝퉁천국으로 봐 왔던 우리의 단편의 시각을 접고 앞으로 중국경제에 있어서 첨단산업과 서비스산업의 약진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늘날 중국의 약진은 그동안 미국 등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예측은 모두 빗나갔다. 자본주의 시각에서의 관점은 적어도 중국에 대해서는 부정확했다는 사실이다. 1991년 12월 소련 공산당이 권력을 내려놓음으로써 소비에트연합이 해체됐다. 그러자 서방세계는 이제 중국으로 눈길을 돌렸다. 소련 공산당이 해체됐으니 당연히 중국이라는 복잡하고 이해 못할 공산주의 국가도 붕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서방의 이런 기대와 예측은 모두 빗나갔다. 오히려 G2국가로 올라서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게 된 것이다.

운하 건설에 매진한 수나라
삼국시대를 위나라가 통일한 뒤 이어서 진(晉)나라가 있었고 그 뒤 남조와 북조시대가 있었다. 이를 통틀어 위진남북조시대라고 하는 400년 가까이 계속된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중국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삼황·오제(三皇·五帝)시대-하(夏)-은(殷,商나라)-주(周)-춘추시대(春秋時代)-전국시대(戰國時代)-진(秦,BC221)-한(漢)-위·촉·오 삼국시대-진(晉)-남북조시대-수(隋,AD589)-당(唐)-오대십국(五代十國)-송(宋)-원(元)-명(明)-청(淸)-중화민국(1911)-중화인민공화국(1949) 순이다.

혼란한 남북조시대를 마감하고 천하를 통일한 것은 수나라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구려를 침입한 수양제가 있었다. 수나라는 37년의 짧은 왕조역사를 마감했지만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주요 운하 대부분은 수나라 때 건설됐다. 남쪽 저장성 항주에서 베이징에 이르는 ‘경항운하’ 역시 수나라가 만들었다.
수나라가 퇴장하고 중국 역사상 가장 부흥의 시기인 당나라(618~907)시대가 막을 연다. 우리의 삼국시대 역사에도 당나라가 등장한다.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 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했다. 그래서 서기 660년 계백장군이 이끄는 백제군이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맞서 싸웠던 황산벌 전투를 우리 역사상 최초의 반외세투쟁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국제도시, 당나라 수도 시안
대당제국(大唐帝國)으로 부를 만큼 중국 역사상 부흥기였다. 이백과 두보 등 시인들의 시대였다. 당나라의 현종과 양귀비(본명 양옥환)가 이 시대 인물이다. 동서양 교역로인 로마까지 통하는 실크로드가 활성화됐고, 당시 수도 시안(西安)은 인구 100만 명에 육박했으며, 그 중 3만여명이 외국인이었을 정도로 국제도시로 번성했다.

중국 역사상 주류민족인 한족이 아닌 이민족이 중국대륙에서 왕조를 세운 적이 있다. 바로 몽고의 원나라와 중국 마지막 왕조인 만주족의 청나라다. 남송을 멸망시킨 원나라(1260~1368)는 대원제국이라고 부를 정도로 중국대륙 뿐 아니라 중동 페르시아와 유럽대륙 일부까지 지배함으로써 세계역사상 가장 큰 땅덩어리를 지배한 기록을 세웠다. 이때 우리나라는 고려시대이며 원나라 침략에 맞서 삼별초의 항쟁이 있었다. 당나라가 쇠퇴하자 오대십국(五代十國)시대를 거처 송(宋),원(元),명(明)으로 이어진다. 중국 역대 왕조들은 1천년이 넘도록 시안을 수도로 삼았으며 그 이후 남경이었다.

원나라의 지배세력 몽고족을 몰아낸 명왕조가 개국하고 3대 황제 영락제가 남경에서 지금의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기고 자금성을 지었다. 명나라 때인 1592년 조선에서는 일본 침략의 임진왜란이 있었고, 이때 명나라는 조선에 파병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명나라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중국 대륙을 호시탐탐 넘봤던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에게 명나라를 칠 테니 길잡이가 돼 줄 것을 요구하며 조선을 침략했다.

청, 강건성세가 막내리다
당시 명과 조선은 ‘책봉-조공 체제’으로 대표되는 군신관계였으며, 조선은 제후국 지위에 있었다. 명 황제가 승인한 조선 국왕 책봉, 명 연호의 사용, 정기적인 조공 등 제후국으로서 의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왜군에 쫓겨 의주까지 피신한 조선 선조의 도움요청을 받은 명나라는 자신들을 향해 침공한 일본군을 멀리 국경선 밖인 조선 땅에서 미리 저지할 필요가 있어서 파병을 결정했다고 볼 수 있다. 명나라가 약해지자 지금의 만주 땅에서는 만주족이 일어나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나중에 청나라(1644)가 건국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병자호란(1636)이라는 치욕을 겪었다. 대청제국이라고 불렀던 청나라는 강희제부터 옹정제, 건륭제에 이르는 3대에 걸쳐 강건성세(康乾盛世,1661~1795)로 부를 정도로 세계제국으로서 부흥기를 맞기도 했다.

아편전쟁 직전인 지난 1820년 당시 청나라의 GDP는 전 세계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는데, 이는 산업혁명을 이룬 영국도 전 세계 GDP 비중이 5%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짐작이 간다. 그러나 중국대륙은 유럽 등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눈이 어두워 19세기 중반부터는 서구 제국주의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반봉건 반식민지 국가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중국의 시련이자 치욕의 역사는 1840년 영국과 벌인 아편전쟁부터 시작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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