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목포지점 명인 정영주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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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 목포지점 명인 정영주 FC
  • 최지우 기자
  • 승인 2015.02.17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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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름으로 너를 지킨다

뇌종양 발병 딸 위해 17년 노력 정성으로 완치
신뢰와 정직 특유 친화력으로 유통과 영업에 두각
자신 경험 재밌는 책과 강의로 세상과 소통 계획

 
가족의 사랑을 담은 드라마나, 영화, 책이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은 세상이 점점 각박해져가고 개인주의로 흘러가는 현대사회에서 대리만족을 원하는 사람들의 슬픈 단면을 대변해주고 있는 반증일 것이다. 세 남매를 키우는 홀아버지의 가슴 절절한 자식 사랑이야기가 주말 대한민국을 눈물로 강타하며, IMF이후 급부상되었다 잠시 느슨해졌던  아버지의 가족 사랑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6.25 전쟁을 겪으며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가족을 위한 일생을 살아야 했던 한 남자의 삶을 조명한 한 편의 영화는 중 장년들의 옛 향수와 당연시 되었던 아버지에 대한 역할이 재조명되며 천만이 넘는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을 안겨줬다.  가족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욕망과 꿈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보통아버지들의 위대한 가족 사랑이 또 한 번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헤쳐 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지역에서도 17여 년간의 유통업 종사 경험을 살려 보험업계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 억대 연봉의 반열에 올라 열심히 생활하는 정영주FC의 숨겨진 가슴 아픈 사연이 지인들을 통해 알려 지며 화제가 되고 있다.

항상 좋은 일만 있을 것 같고, 불행한 일 없이 행복한 일 만 있을 것 같은 정영주FC 에게 남다른 사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달리 보는 것이다. 올해 48살 정영주FC는 7살 때 뇌종양 판정을 받은 딸의 치료를 위해 자신의 온 삶을 바쳐왔고, 수 억 원에 이르는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제대로 된 휴가도, 휴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정영주FC는 “자식을 위하는 일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아버지로의 의무와 책임을 다 한 것이다. 어려운 치료를 잘 견뎌내고 완치되어 사회인으로 생활하고 있는 딸아이가 오히려 대견하다.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밝고 씩씩하게 자라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이젠 어엿한 사회인으로 전공한 복지 분야에서 제 몫을 잘 해내길 바란다고 했다. 이제는 덤덤하게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일이였지만 처음 발병 당시에는 앞이 캄캄한 일이였다. 당시 하던 사업도 승승장구 하고, 결혼 생활도 안정기에 접어들어 두 딸의 재롱으로 하루가 짧게 느껴졌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그 엄청난 시련으로 인해 그의 인생은 완전 바뀌었다.
서울 삼성의료원에서의 수술과 항암 치료는 일주일에 최소 8백여 만 원의 치료비를 필요로 했고,  그 준비는 온전히 자신의 몫 이였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곳 병원과도 비교도 되지 않는 의료시설과, 의사의 투철한 직업의식에서 감동을 받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에서 꼭 치료를 받게 해야 겠구나 결심했었다. 하지만 돈이 관건 이였다. 그때부터 돈의 소중함과 귀함, 목숨까지도 살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그렇게 숨 가쁜 고비도, 가슴 쓸어내리는 아찔함도 다 넘겼지만 아직도 한 달에 한번 정기 검진을 위해 서울을 오간다. 그때부터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아니 아이를 살리기 위해 하루 24시간을 뛰었다.

무안 해제가 고향인 정영주FC는 다복한 가정에서 6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시골에서의 엄하던 다른 아버지의 모습과는 달리 자상하고 책임감 강한 아버지와 배려심과 인자함을 갖춘 어머니는 그에게 무한한 긍정과 자신감을 심어주었으며, 행복한 유년의 기억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문학소년이였지만 다른 뜻을 품은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더 공부하기를 원하는 부모님의 기대와는 달리 일찍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이런저런 일을 경험삼아 해보던 그는 25살 때 동원참치 영업사원으로 일을 하며 새로운 시작을 한다. 타고난 긍정과 친화력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전국에서 알아주는 1등 영업사원으로 이름을 알려지자,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고 자기의 영역을 넓혀 나가는 일한 만큼의 댓가가 주어지는 영업이 적성에 딱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30대 초반, 본격적인 자신의 사업으로 정착될 때 까지 그에게 그 어떤 힘든 일도 어려움도 다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그런 자신감을 가족을 보살피는 의무감이요 숙명으로 승화시켰다. 정영주FC는 “신뢰와 정직, 이 두 가지 정신으로 고객을 대하다 보니 고객들이 먼저 알아주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고객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갔다. 남들보다 더 나은 실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던 시절 이였으며, 나를 지탱해주고 우리 가정을 지켜준 고마운 일이였다”고 회상했다.

그런 그가 또 한 번의 변화를 시도한 것은 3년 전이였다. 평소 명절 선물로 참치를 납품했던 삼성생명 지점장의 강력한 권유에 의해서였다. 처음엔 얼토당토 않은 소리하고 무시하고 거부했지만 시대의 변화와 돈의 변화를 느끼던 터였기에 서서히 마음이 열렸다. 투 잡으로 경험이나 해보지 뭐. 처음 시작은 그랬었다. 하지만 타고난 승부욕과 성실성 친화력은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고, 유통업으로 다져진 노하우는 그에게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보험 수령 경험은 고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큰 무기가 되었다.

“내가 힘들었을 때 도움을 받았던 보험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미래를 준비하게 하고 있다. 내가 겪었던 일이였기에 자신 있게 권유할 수 있고, 당당하게 설명할 수가 있다. 무슨 일이든 최소 10년은 해봐야 하지 않겠나. 이제 시작 단계라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MDRT회원과 회사에서 불러주는 명인 칭호를 받고 있는 정영주FC의 실적은 연봉이 말해주고 있는데 현재 그는 매월 2천여 만 원의 급여를 수령하고 있다. 남들보다 두 세배의 고난과 역경을 슬기롭게 헤쳐 온 정영주 FC 에게  인생 가장 큰 스승은 책이요 제일 소중한 것은 가족과 사람이다. 그는 책을 통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터득했고, 사람들을 통해서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깨우쳤고, 가족을 통해 자신의 삶의 목적이 분명 해졌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바람은 그 동안의 자신의 경험을 재미있는 책으로 엮어보는 것이다. 슬프고 힘든 얘기가 아닌 재미있고 위트 있는 웃음이 있는 얘기로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 그동안 쌓아온 영업의 노하우와 성공법칙을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성공학 강사로의 길도 모색 중이다.  새끼들을 위해 자신의 온 몸을 내어준 가시고기처럼 가족을 위해 지난 생을 불살랐던 정영주FC는 이제 자신이 가진 재능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려는 진짜 큰 야망을 준비 중이다.
최지우기자 (tm01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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