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도심 소재 대명춘 중화요리 손연산, 이순희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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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도심 소재 대명춘 중화요리 손연산, 이순희 부부
  • 최지우 기자
  • 승인 2015.03.25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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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이들의 한 끼, 사랑과 정으로 요리한 짜장면 한 그릇
 

15년째 매월 무의탁 어르신, 노숙자 짜장면 봉사
아픈 가족사 이겨내고 아들 성형외과 교수 키워
노후 고향 돌아가 어르신들 대접 소박한 꿈 꿔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는, 맑고 선한 모습이 꼭 닮은 부부가 36년째 운영하는 중국집에 아주 특별하고 귀한 손님들이 찾아온다.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65세 이상의 어르신들과, 한 끼 식사가 아쉬운 노숙자들, 가난에 지친 소외계층까지 매월 찾아와 인심 좋은 부부가 정성과 정으로 요리한 짜장면 한 그릇을 대접 받는다.

15년째 변함없이 시행하고 있는 이 나눔 행사는 이제는 특별할 것도 없는 당연한 월중 행사로 자리 잡았고, 고소한 짜장면의 매혹적인 향기와 함께 부부의 선행은 입소문을 타고 지역사회의 큰 화제로 회자되고 있다. 미담의 주인공은 목포 원도심 한가운데서 대명춘 중화요리집을 운영하고 있는 손연산(62)대표와 그 부인 이순희(59)씨다.

천사의 미소를 간직하고 있는 손연산대표와 포근하고 선한 모습의 이춘희씨는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몸을 움직여 일해야 하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자신들을 위해 돈을 모으고, 저축하는 대신 남과 함께 나누고 베푸는 삶을 이어오고 있다.

손연산 대표는 “나 혼자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고, 우리 식구만 잘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주위에 배고프고 한 그릇의 짜장면에도 감동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나눠야 하지 않겠는가. 장사를 시작하고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마음은 항상 있었지만 형편이 안 되서 나중에 자리 잡으면 잘해드려야지 했는데 돌아가셔서 항상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어르신들에게 짜장면을 대접해 드리는 것이다. 내 위안이지 남에게 알리고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손 대표의 짜장면 봉사는 지난 98년 지금의 가게자리로 옮겨오면서 시작되었다. 처음 가게를 시작했던 곳에서는 생각은 간절했지만 너무 비좁아 시작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홀로 12년째 매월 둘째 주 토요일이면 인근 65세 무의탁 어르신들에게 대접하는 짜장면 봉사가 소문나면서 3년 전 부터는 천사무료급식과 함께 하고 있다.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현대인들에게 이타적인 삶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손대표의 첫 시작은 어땠을까 되돌아봤다.

신안비금이 고향인 손 대표는 작가를 꿈꾸던 중학교 2학년 사춘기시절 치기어린 반항으로 상경해, 배는 곯지 않고 생활 할 수 있다는 친척의 권유로 중국집 배달 일을 시작했다. 자린고비였던 중국인주인은 가난한 섬 소년의 노동에 대한 대가로 최소한의 먹을 것과 난방도 되지 않는 잠자리에, 세탁도 하지 않는 불결한 이불을 제공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 때의 고생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그 당시에는 지금의 배달통이 아닌 무거운 나무 배달통을 들고 뛰어다녀야 했었다. 자전거는 물론이고 오토바이도 보급이 안 되던 때여서 오로지 뛰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잠깐 딴 생각도 했지만 차츰 주방에서 조리 기술 전수를 받고 재미를 붙이면서 평생의 업이 되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목포 아가씨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면서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던 손 대표는 차츰 고향이 그리웠다. 이제는 중국 요리에 대한 전문가로 고향에서 번듯한 내 가게를 운영하고 싶었던 것이다. 반대하는 아내에게 5년만 생활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자는 다짐을 하고 온 식구들이 목포로 이주, 호남동에서 대명반점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내 이순희씨는 “이곳에서 시작한 장사가 아주 잘 되었었다. 5년만 더 있다 올라가야지 했는데 지금까지 살고 있다”며 웃었다. 장사가 잘 되고 금쪽같던 남매는 착하고 공부도 잘해 아무 걱정 없는 축복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하늘이 무너지는 청천 벽력같은 소식이 부부에게 전해졌다.

이순희씨는 “유난히 예뻤던 아이였었다. 우리 부부뿐 아니라 근처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딸아이가 급성임파성백혈암 진단을 받았다. 그때부터 서울성모병원에서 난 아이와 생활하고 남편은 여기에서 아이에게 좋다는 온갖 약을 다 올려 보내는 생활을 4년 동안 했다. 큰아이와 남편이 고생을 많이 했지만 아이를 지키지는 못했다. 그때 동생의 투병생활을 지켜보던 큰 아이가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었고, 우리 부부는 병원 생활에서 의사들의 고생을 너무 많이 봐왔기에 반대를 했지만 지금 조대의대 성형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고 평생 멍으로 남아있는 슬픈 가족사와 자랑스러운 아들에 대한 얘기를 담담히 들려줬다. 

아들은 부부의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버팀목으로, 바쁜 부모님을 위해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고 주말이면 그 빡빡한 시간 속에서도 집안 청소를 도맡아 하는 기염을 보였다. 의사 부부인 아들과 며느리는 교수로, 병원 원장으로 재직 중인 요즘도 가게에 오면 팔을 걷어 부치고 손님맞이와 잡일을 도맡아 하고, 길가에 놓인 만두 가판을 도맡는 심성과 인성의 소유자로 손대표 부부의 어깨를 으쓱이게 하며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슬픈 이별 후 늦게 태어난 딸은 그 어떤 자리에서도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대학 졸업과 함께 특수분장 전문가의 길을 걷고 있다. 어려운 고비를 다 넘기고 이제는 모든 일에 여유를 찾은 요즘 손대표가 꿈꾸는 미래는 아주 소박하다. 하지만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 나이 먹으면 시골로 들어가 그 곳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볼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그 곳 어르신들에게도 자장면 봉사를 하고 싶다. 그리고 현재 한 달에 한번 하고 있는 짜장면 봉사도 장사가 조금만 더 잘 되면 두 번으로 늘려서 할 계획이다”고 했다.
 
목포 원도심 한가운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대명춘 중화요리집에는 남을 위해 봉사하는 솜씨 좋고 마음씨 좋은 한 없이 선량한 웃음의 소유자 천사표 부부 손연산 대표와 이순희씨가 있다.

최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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