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제대로 알자<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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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제대로 알자<15>
  • 정거배 기자
  • 승인 2015.05.1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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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동포를 어떻게 볼 것인가?
▲ 한국 내에 취업비자로 들어와 살고 있는 조선족 동포는 60만 명을 넘고 있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논란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한·중 수교 이후 특히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자리 잡는 과정에서 언어장벽을 쉽게 넘을 수 있도록 소통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부정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 정 거 배 (인터넷전남뉴스 기자, www.ohmyjnews.com)
중국은 한족을 주축으로 해서 56개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다. 2천년 이상 이렇게 많은 다민족들이 한 국가를 이루고 있는 점도 특이할 만하다. 물론 14억의 중국인구 가운데 한족이 92%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55개 민족이 8%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봐도 중국대륙은 한족이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중국 2천년 역사상 소수민족이자 오랑캐로 불렀던 이들이 왕조를 세우고 다수인 한족을 지배하던 경우는 몽고족의 원나라 왕조와 만주족의 청나라 시대였다. 기간으로 말하면 원·청조를 합쳐 약 500년 남짓 되기 때문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청조가 1911년 쑨원이 주도한 신해혁명으로 무너질 때까지 계산하면 약 400년 가까이 된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56개나 되는 민족이 서로를 포용하고 하나의 통일된 국가공동체로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속돼 왔을 뿐 아니라 세계 G2국가로 부상했다는 사실은 세계사적으로 봤을 때도 주목 할 부분이다.
 
조선족,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민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접하게 됐던 조선족 동포는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한 민족 한 핏줄이라는 애정과 경계심이 교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먼저 우리가 주지해야 할 것은 조선족은 분명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또는 공민이라 부른다)이자, 55개 소수민족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일본 식민지 시대 만주를 점령한 일본에 맞서 무장독립투쟁을 벌였던 당사자들이거나 그의 후손들이라는 사실이다.

주목할 것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 된 이후, 중국정부가 55개 소수민족 중에서 자치구를 처음으로 승인한 것이 바로 조선족 자치구였다. 그 이유는 중국 공산당이 1920년대 말 국민당과 내전을 치르면서부터 대륙을 침략한 일본에 대항해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조선인들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1921년부터 1949년까지 국공내전과 항일투쟁과정 중 지린성에서 희생된 혁명 열사 3만6천명 가운데 옌볜출신 열사가 1만4,756명이고, 이 중에서 1만3,843명이 조선족으로 무려 93.8%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동북 3성에 살고 있는 조선족이 신중국 건설과 항일투쟁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연재될 중국과 북한관계를 소개하면서 자세하게 언급할 것이다.

한일합방 후 만주 조선인 크게 증가
조선족이 주로 사는 지린(길림)성과 헤어룽장(흑룡강)성,랴오닝(요녕)성을 동북 3성이라고 부르는데 역사적으로 옛 고구려 땅이다. 그렇지만 조선족의 뿌리는 1860년대 말 한반도에서 이주해 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1636년 병자호란 때 볼모로 잡혀간 조선인이 당시 50만명에 달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돌아오고 일부는 만주 일대에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19세기 말 한반도의 들이닥친 대기근을 피해 우리 민족이 만주로 건너갔는데, 기록에 따르면 청나라 말기에 해당하는 1869년부터 3년 간 동북 3성으로 이주한 조선인이 6만명에 달한다는 기록이 있다. 그 중에서는 가까운 함경북도에서 넘어간 사람이 2만6000명에 달했다. 그 이후 1910년 한일 합방을 계기로 조선인들의 만주이주는 급속하게 증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만주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점령당하자 이곳에 사는 조선인은 친일파, 공산주의자, 독립운동파로 분류됐는데, 그중 1945년 8월 일제 패망 후 친일파 조선인들은 만주를 떠나 대거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대부분 남한으로 이주했고 만주에 남은 조선인은 112만명 가량 됐다. 이들이 바로 지금의 조선족들의 부모세대나 조부모 세대들이다. 항일투쟁과 국공내전에서 공이 컸기에 민족적 정체성이나 자존감도 높다.           

한국 거주 조선족 70만명 육박
작년말 현재 중국 통계국에 따르면 조선족 인구는 183만 명으로 55개 소수민족 중에서는 인구 수 면에서 14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조선족은 옌볜의 조선족 자치주를 중심으로 모여 살고 있으며 한·중 수교 이후 한국으로 취업을 위해 들어오거나 한국인과 결혼하는 경우도 많다. 

작년 말 현재 취업을 위해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 조선족은 60만7천명으로 경기도 안양시 인구와 비슷한데 실제로 체류하고 있는 수까지 합하면 한국 내에 70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추산된다. 32만 8천여 명이었던 지난 2007년에 비해 거의 두 배가 늘었다. 이러다보니 중국 동북지방에 남아 있는 조선족은 어린 자녀와 노인들이 대부분이어서 여러 가지 문제를 낳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자녀들이 조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출생률이 낮아지면서 동북 3성에 있는 조선족 소학교가 폐교되면서 대부분 어려서부터 조선어를 배우는 기회가 줄어들고 대신 중국어(漢語)만 접하게 되면서 조선어를 못하는 조선족 자녀들이 늘고 있다. 필자는 20대 이하는 물론이고 40대 이하의 조선족도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를 봤다.

한국기업, 중국진출 시 소통 역할 담당
한국인들의 조선족에 대한 인상은 긍정과 부정으로 엇갈린다. 양 국의 수교로 한국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조선족의 역할이 커졌고 일자리가 늘어난 것이다. 그동안 적성국가의 인민이었던 조선족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인들은 중국여행을 하면서 처음 대면하게 됐다. 중국 패키지여행의 가이드가 된 조선족을 만나게 된 것이다. 같은 동포라는 애정과 정서가 있기도 했지만 불필요한 쇼핑 강요 등으로 조선족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작용한 사례도 있다. 또한 한국기업이나 개인이 중국으로 진출하면서 결국 언어소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통역요원으로 조선족을 고용하거나 함께 동업하는 일까지 생겼다. 그런데 중국에서 실패한 개인 사업가나 기업인들은 당연히 조선족을 좋게 봤을 리가 없을 것이다. 물론 조선족이 한국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친다면 한족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한국인일수록 조선족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성공을 거둔 이유 중의 하나는 두 나라 언어를 구사하는 조선족의 공이 컸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기관 관계자나 현지 중국인들과 소통역할을 하는 조선족이 없었다면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초기에 자리를 잡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초창기에 중국에 주재원으로 왔던 한국기업 관계자들이 비교적 빠른 시간에 영업현장 등 업무를 장악할 수 있는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조선족의 도움이었다. 한국기업들이 일본 등 외국기업보다 빨리 영업 면에서도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중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인들의 입에서도 이런 평가를 하더라는 것이다.

한국기업의 대륙진출 좋은 파트너 기대
한·중 수교 전에는 동북 3성에만 밀집해 있었던 조선족은 양 국의 교류가 활발해 지면서 지금은 연해지역인 산동성 칭다오, 옌타이를 비롯해 대륙 남쪽의 계림 그리고 대도시 베이징, 상하이에 이어 최근에는 삼성반도체 공장이 건립된 시안까지 분산돼 살고 있다. 젊은층은 한국인 여행객을 상대로 가이드를 하는 것을 비롯해 일부는 숙박업과 식당 등을 하고 있거나 한국관련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조선족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은 그들이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사람이라고 믿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으로서  중국 한족과 함께 살아온 그들을 한국사람이라고 여기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 정서를 갖고 있는 조선족은 분명 한국과 중국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숙명적인 존재이자 양쪽의 것을 공유하고 있는 장점을 갖고 있기에 한국인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곧 세계의 공장이자 글로벌 시장인 중국대륙에 한국이 진출하고 양 국가 간 교류를 활성화하는데 어느 나라도 갖고 있지 못하는 무기를 대한민국이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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