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문화사업진흥회 박형기(예명 금산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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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문화사업진흥회 박형기(예명 금산아) 이사장
  • 최지우 기자
  • 승인 2015.05.15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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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문화운동으로 평범한 시민들에게 특별한 꿈 제공
▲ 박형기 이사장

재능기부 우리동네밴드 결성 1~4기 82명 연습 및 공연
오는 18일 제1회 한마음원산음악회 기획, 섭외 준비 중
소외된 이들 위한 나눔 실천, 전국 통기타 경연대회 계획

그는 가수다. 한때는 화려한 의상으로 치장하고 밴드 반주에 맞춰 무대를 누비며 젊음을 불태우던 언더그라운드 유명 가수였다. 요즘 그는 화려한 무대 대신 전문적으로 실용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취미로 음악을 공부하는 순수 아마추어 늦깍이 새내기들을 강습하는 교수로 더 유명하다.

문화가 살아있는 도시, 문화로 소통하는 사회를 만들어 예향의 전통을 지켜가는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고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사단법인 문화사업진흥회 박형기 (예명 금산아)이사장. 그가 펼쳐가고 있는 ‘작은 문화 운동’, 우리동네밴드가 소리 없는 울림으로 지역사회 작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평범한 시민들과 조용한 문화혁명가 그가 만들어가는 평범하지만 특별하고, 단조롭지만 아름다운 우리동네밴드의 화음은 듣는 이들에게 음악 그 이상의 감동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동네밴드는 3년 전 박교수가 진행했던 목포주말학교 ‘M-POP 경연대회’를 주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M-POP 경연대회’는 주5일 수업제 운영에 따른 학생들의 끼를 발휘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목포 교육지원청에서 만든 프로그램이였다.  K-P0P이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을 때였기에, 목포 학생들에게도 K-POP 주역으로 당당히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였었고, 학생들의 폭발적인 호응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기억했다.

M-POP 경연대회는 그때까지 현장 음악인으로 만족하며 생활하던 그에게  음악지도자로의 길을 걷게 되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대학 강의 요청과 함께 취미로 활동하는 직장 동호회 작은 밴드를 지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박교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기 위한 길을 모색하게 된다. 거기에는 늦둥이 아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담겨있었다.

“결혼 10년 만에 어렵게 얻은 아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한 기부를 하는 뜻 깊은 삶을 살아간다면 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시작되었다. 나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이 음악을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고 그 일이 결국 내 아들을 위하는 일이 되려니 하는 단순한 생각 이였다”고 밝혔지만 아들에 대한 간절하고 애절한 마음이 동해서 하는 일이였다.

우리동네밴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박교수의 결심과 함께 평소 음악을 좋아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싶은 꿈을 꾸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꿈을 주고자 시작된 우리동네밴드 1기가 지난 2012년 처음 결성되었다. 드럼, 키타, 키보드로 구성된 미니 밴드였던 우동밴 1기는 비록 전문적인 음악인은 아니였지만  매주 토요일 프로의 마음으로 연습을 하며 차근차근 기본기를 다져 나갔다.

그렇게 시작된 우동밴 1기는 6개월 후 첫 공연을 통해 짜릿한 만족감을 맛보며 정식 아마 음악인으로 입문을 했다.

“1기 회원들은 첫 무대 경험을 통해 자신감과 함께 가능성을 엿봤고, 자신에 대한 무한 만족으로 자신감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각종 행사에 초청되어 꾸준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된 연주로 시민들 앞에 설 수 있을 것이다”고 자랑했다.

현재 우동밴은 4기 기수까지 모집을 마친 상태이며 82명의 회원들이 각자의 악기를 정해 매주 토요일 연습을 통해 무대 공연을 준비중이다.

오는 18일 공연 준비 중인 ‘제1회 한마음 원산음악회’는 박교수가 기획한 대규모 공연으로 전국 유명밴드와 함께 우동밴도 공연을 하게 된다 .

박형기 (예명 금산아)이사장은 고흥 금산이 고향으로 어릴 시절부터 꿈꿔왔던 가수가 되기 위해 중학시절 서울행을 결심하게 된다.

학교 졸업 후 신화창조 그룹을 결성해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하며 생의 가장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라이브 공연과, 행사 활동을 하며 바쁜 시절을 보냈었고,  젊음과 꿈, 열정이 있었기에 세상 무엇 하나 겁나는 것이 없던 시절이였다. 돈도 많이 벌었고, 재미도 많았던 결코 잊을 수 없는 시절이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인기 속에 2집 앨범을 내고 일본으로 활동무대를 넓혔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생각만큼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고 화려했던 젊은 시절과 일본에서의 경험담을 담담히 추억했다.

9년간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박교수는 우연히 여행 왔던 목포에 정착하게 된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풍부한 먹거리, 예로부터 내려오는 예향의 전통이 맘에 들어 이곳에 정착하며 아들의 고향으로 만들었다.

“이 곳은 사랑하는 내 아들의 고향이고 내가 남은 여생을 보내야 하는 곳이다. 무한한 관광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활용이 되지 않고 있다. 중국을 비롯해 일본 관광객들이 관심 있어 하고 가보고 싶은 곳으로 목포를 많이들 꼽고 있지만 막상 와서 보고는 실망을 하고 돌아간다. 문화사업진흥회에서는 체험형 중국 관광객 유치를 하며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들이 목포를 다시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민, 관, 사회단체들의 협조 체제가 필요하며 우리 전통이 살아있는 아이템 개발이 시급하다”는 안타까운 마음도 전했다.
현재 문화사업진흥회에서는 중국관광객을 상대로 전통문화 공연과 혼례 재연, 한복체험, 염색체험, 감자탕 실습 등 체험관광을 진행하고 있으며, 매회 200~300여명의 중국관광객들이 몰려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렇듯 문화를 통해 지역사회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박형기 (금산아) 교수는 우동밴이 지역 소외된 곳을 찾아 꿈을 전파하고, 그들에게 자신이 배웠던 재능을 기부하는 릴레이 기부를 꿈꾸고 있으며, 목포에서 전국 통키타 경연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문화가 살아있는 도시, 문화로 소통하는 사회를 만들어 예향의 전통을 지켜가는 특별한 내 고장을 꿈꾸는 문화혁명가의 소박한 꿈이 평범한 시민들에게 특별한 꿈을 꾸게 하고 있다.

최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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