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목포시지회장 홍용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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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목포시지회장 홍용배
  • 최지우 기자
  • 승인 2015.06.1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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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1개월 부친 입대 6.25전쟁 양구전투 전사
아버지, 가정의 정 그리며 조부모손에서 자라
선친 뜻 이어 지역 전몰 유족위해 봉사와 희생

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전남일보사가 주관하고 광주지방보훈청이 후원하는 전남보훈대상 유족부분에 대한민국 전몰군경 유족회 전라남도 도지부 목포시지회 홍용배지회장이 수상의 영광을 안으며, 그의 숨겨진 업적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홍용배지회장은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목포시지회장으로 봉직하며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현충탑 참배는 물론, 주변 정화에 솔선수범해 왔을 뿐만 아니라 전몰군경유족회가 휴전협정일(7월 27일)을 기하여 매년 실시하는 휴전선 155마일 종주행사에 매회 참석 하고, 임실 호국원도 매년 2회 이상 찾아가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또 홍지회장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도 어려운 회원들을 위한 나눔의 미덕을 실천하고 있는데, 매월 20kg 쌀 3대씩을 기증, 현재까지 약 60회, 약 900만원 상당을 쾌척했고, 2008년부터 매년 불우회원 500여명을 초청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지회장으로서 고령, 거동불편, 저소득 보훈가족의 가정을 추석, 설 연말연시 때마다 방문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해결하여 주면서 지역봉사단체와 보훈 모심이 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 연결하여 주고 6.25전몰군경유자녀를 중심으로 젊은층의 유족을 보훈단체 봉사단으로 영입하여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 할 수 있도록 홍보하고 있다. 
 
건강문화교실을 통하여 노인성 질환 치료법과 운동요법 등에 관심을 써 국가유공자와 유족의 행복권 추구와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고 보훈단체 활성화에 공헌 하였다

홍지회장은 “내가 어렵게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 회원들은 다 가족처럼 느껴진다. 내가 살아오면서 받은 경험이 없기에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유족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참 많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울타리가 되어줄 가장을 잃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우리 유족들 에게는 커다란 상처다”고 했다.

전몰군경 유가족들의 대부분은 번듯한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고 일용직이나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등 생활에 대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힘든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한다.

홍 지회장은 이런 회원들의 복지증진과 영예로운 생활을 위해 적극 힘써오고 있으며, 회원들이 국가유공자 유족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명예와 품위를 지켜갈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도 사옥도가 고향인 홍지회장은 1951년 아버지 고 홍석규씨와 어머니 임정금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홍지회장이 생후 1개월 때 6.25전쟁 중 군에 입대, 경기도 양구 전투 중 맹렬하게 싸우다 전사하였다.

독자인 아들을 잃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 마져 재혼하게 되면서 홍지회장은 할머니 손에서 자라게 되었다.

다행스럽게 홍 지회장이 태어나기 2개월 전 아들을 잃은 할머니의 젖을 먹고 할머니를 엄마로 여기며 유소년기를 보냈고 번듯한 청년이 되었다.

“할머니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픈 일이 두 번씩이나 일어났지만 나한테는 다행 이였다. 나보다 두 달 먼저 태어난 삼촌 대신 할머니 젖을 먹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른 회원들에 비하면 난 양호한 환경에서 사랑받으며, 자랄 수 있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청년이 되면서 홍 지회장은 연예인을 꿈꾸며, 바람 같은 생활을 잠깐 했지만 조부님의 바람대로 이른 나이에 결혼, 사옥도에서 농사지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첫 부인이 산고 끝에 사망하게 되면서 인생무상과 불행의 대물림에 대한 허탈함에 한동안 방황하며 지냈다.

"그때는 참 힘들었던 때였다. 할아버지가 농사일을 하면서 다치지 않았다면 난 아마도 한참을 더 힘든 생활을 했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사고를 보면서 마음을 다 잡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재혼을 해 첫 아이가 원인모를 병을 앓게 되면서 홍회장은 지난날의 가슴 아픈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으로 섬을 떠나 목포로 이주할 것을 결심한다.

섬에서의 농사를 정리하고 건축 일을 하며 새로운 시작을 했다.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섬에서 아이가 많이 아팠었다.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무지의 결과로 인해 한 생명을 잃었지만 두 번째는 재연하고 싶지 않아 바로 이주를 결심했다.

일가친척, 의지할 곳 하나 없는 객지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비록 자신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고 자랐지만 자신만큼은 자식을 위해  모든 걸 바쳐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키운 3남매는 교사로 직업군인으로 학생으로 번듯하게 잘 자라 아버지를 존경하고 나라를 위해 몸 바친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있다.

홍지회장은 “현재 우리 보훈 가족들은 연금이 아닌 수당을 받고 있다. 연금과 수당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보훈 가족들에게도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고, 회원 한분 한분의 가정에도 일상의 행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밀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목숨을 바친 아버지의 값진 희생과 빛난 공훈을 깊이 새겨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젊은이들의 본보기가 되어주고 있는 홍용배 지회장의 소박한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마음하나 더 보탠다.

최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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