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작가 이성관의 두근두근 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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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작가 이성관의 두근두근 옛이야기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2.07.3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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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뒤란과 아버지와 장독
▲ 이성관 작가

마음이 울적할 때, 꾸중 듣고 서러울 때
뒤란에 훌쩍이면 장독대 봉숭아꽃
누이의 눈길이런 듯 놀빛 미솔 날렸네.

산마루 흰구름이 목화런 듯 피어나고
들일 간 엄마 놀라 옷깃 여며 주시면
말이야 하지 않아도 아빠 마음 봄바람.
                -뒤란(‘95년 파랑새창작동요) 전문--

왜 그랬을까? 농경사회에서 그리고 특히나 아버지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지난 날, 할아버지나 아버지 하면 특히 시골에서 거의 대부분의 가정들은, 嚴父慈母라는 말이 실감날 만큼 아버지와 자식 사이란 지금의 부자관계처럼 그렇게 살갑고 허물없이 감정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라, 至嚴하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위엄과 권위와 아니, 때로는 외경의 대상으로까지 각인되어 있었던 것은.

그래서 행여 식구 중 누군가가 잘못(?)---누나가 밤마실을 갖다 조금 늦게 돌아온다거나, 동생과 방 안에서 좀 심하게 장난이라도 하는 등의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극히 하찮은 일---이라도 있을라치면, 집안에서는 들키지 않게 하려고 쉬쉬 하며 감싸거나 숨겨주기에 급급했으니, 이때 누구보다 안절부절못했던 분은 바로 어머니요, 할머니요, 누이의 몫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어디 감쪽같이 다 가릴 수가 있으랴. 잘못 아닌 잘못이 이내 잘못 비쳐지게 되어 호되게 꾸중이라도 듣고 난 날은, 어린 마음에 마땅히 서러움을 달랠 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고 하여, 습관처럼 찾았던 곳이 바로 옹기종기 장독대가 모여 있는 뒤란이나, 대낮에도 어둑어둑한 마루 안쪽 쌀뒤주(독) 등이 놓여있는 곳간. 일 년 내내 식구들 입맛의 보고(寶庫)인 반찬들을 저마다 가득가득 담고서 햇볕에, 달빛에 그리고 어머니,할머니의 손길에 저절로 깊은 맛이 배어들어가는 장독대.

뉘 집이랄 것도 없이 한여름엔 장독을 떠받치고 있는 돌 사이로 봉숭아(봉숭아꽃 냄새를 뱀이 싫어한다고 함)며 맨드라미가 키를 재며 피어나고 , 가을이면 주위로 해덩이처럼 감들이 주렁주렁 익어가는, 장독대에서  혼자 훌쩍이고 있노라면 언제 알았는지 바둑이가 따라와  달래는 듯 꼬릴 흔들고, 황혼과 더불어 들일에서 돌아온 어머님께서 화들짝 놀라 나를 감싸안을라치면,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던, 지금의 신세대들은 이해할 수 없는, 우리네 어린 시절.

그러나 누구의 잘잘못을 헤아릴 것도 없이 아버지였기에 무조건 따르며 순종했고, 혹여 조금 서운함이 있었다 한들 금방 또 잊어버리며, 아버지의 호된 나무람도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 뒤였으니, 나무람 속에 큰 강물처럼 담겨 있는 그 속 깊은 사랑을 어린 마음에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었으리.

뒤란은 바로 그래서 우리의 고향이요, 어머니요, 아버지이며, 할머니, 할아버지, 누나요, 오빠,삼촌이 아니였을까.


고향과 뒤란과 장독과 어머니.
고향과 뒤란과 장독과 어머니.
지금은 꽉 막힌 아파트 고층에서 그때가 언제였냐는 듯 도시생활에 길들여져, 그날의 생활들은 아스라한 추억이 되고 말았지만, 산업화의 산물로 이농현상으로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작아져, 다니던 초등학교는 이미 십 수년 전에 폐교는 물론이요, 밤이면 적막함을 느낄 만큼  희미한 불빛 아래 노인들만의 마을로 변해 버렸지만, 그나마 이렇게라도 고향을 지키고 계시니, 이따금 고향을 찾아 옛모습 거의 그대로 그 자리에 놓여 있는, 뒤란의 장독을 볼 때마다 어린시절의 모습이 어제런 듯 떠올라 나도 모르게 향수에 젖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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