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호동 명예동장 송도 공예사 이동하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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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호동 명예동장 송도 공예사 이동하대표
  • 최지우 기자
  • 승인 2015.08.0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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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역사 긍지와 자부심으로 지켜낸다
 

지역 통장상조회 회장, 명예동장 열성 지킴이 활동
목포항구축제 대형 고래 어등 전시 풍요 건강기원
원도심공동화 타계 선도역할 관광 코스 개발 희망

만호동은 목포의 태동을 알리는 목포진영의 소재지로 조선조 세종 때 군사조직의 하나인 목포 만호진을 설치, 수군만호가 머물고 있었던 곳으로 목포진, 만호진으로 불리어 오다가 일제시대 목포대라고 불리었으며, 광복 후 행정조직 개편에 따라 만호진의 이름을 따서 만호동이라고 하였다.

만호동은 목포 500년 역사의 중심지인 목포진과 근대 불교 역사가 담긴 약사사, 난영공원,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과 어린이바다과학관 등 역사와 문화가 담긴 명소들을 비롯해 맛 집과 질 좋은 건어물 시장이 잘 정비되어 있지만  신도심의 발달과, 선창 경기 불황으로 인해 예전의 영광은 찾아볼 수 없고, 원도심 공동화로 점점 쇠퇴해져 가고 있다.

자신이 자란 고향이자, 항구도시 목포를 대표하는 만호동을 알리고, 부흥했던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봉사하고 노력하고 있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주민이 있어 만호동민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다.

그 화제의 주인공은 온 가족이 만호동의 발전과 대외 홍보를 위해 애쓰고 있는 만호동 명예동장 송도공예사 이동하대표.
만호동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기부하고, 만호동 구석구석 손길 안 닿는 곳 없이 살피고 있는 만호동 명예동장  이동하 대표를 만나 그의 만호동 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이동하 대표는 쌍둥이 동생 이동식씨와 함께 지난 24일부터 28일까지 삼학도 일원에서 개최되는 2015 목포항구축제를 맞아 만호동 주민들이 풍요와 건강을 상징하는 고래를 어등으로 제작, 축제장에 전시했다.
삼학도 메인무대 앞에 전시돼 시민과 관광객들을 반길 고래어등은 암수 한 쌍으로 구성됐으며, 가로 3.8m, 세로 1.3m에 육박하는 대형 어등이다.

수컷은 금방이라도 뛰어오를 듯 큰 입을 벌리고 눈을 빛내고 있고 암컷은 새끼를 담고 있는 듯 배가 불룩하다.
고래에 걸맞은 크기와 보다 생생한 묘사를 위해 3주가 넘도록 땡볕 아래서 공들여 걸작을 제작해, 축제장을 찾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 것이다.

▲ 목포항구축제에 제작해서 전시한 고래어등 이동하 이동식 쌍둥이 형제와 홍재웅 만호동장(가운데)

이동하 명예동장은“목포 항구축제가 삼학도 일원에서 진행되면서 가장 가까운 동네인 만호동에서는 뭘 할 수 있을까 생각 끝에 고래 어등을 제작하게 되었다. 올해 10년째를 맞는 항구축제의 성공과 축제를 위해 만호동을 방문한 관광객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고, 만호동이 다시 생동감과 활기를 되찾길 바라는 주민들의 숙원을 담았다. 3대 항 6대 도시였던 항구도시 목포의 옛 명성을 되살리기 위한 일환이다”고 설명했다.

신안 안좌가 고향인 이동하 대표는 한옥을 전문적으로 수리하는 도편수의 3남 3녀 중 둘째 일란성쌍둥이로 태어났다. 가난했지만 화목했던 이대표네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 집이였다.
초등학교 2학년 아버지의 빚보증으로 가세가 기울기 전까지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동생과 함께 늘 봐 오고 하던 일이 목공일 이였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 갔다 오면 아버지를 도와 줄도 잡아주고, 자 눈금도 봐주며, 자연스럽게 목공일을 배우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운동은 아버지와 다른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며, 기회였다.

“체육관 총무를 보며 스스로 돈을 벌어가며 보디빌딩을 했었다. 군대 제대 후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도 운동을 계속 했었고, 여러 대회에 참가해 상도 많이 받았다. 전문적인 보디빌딩 후배를 양성하는 체육관을 설립해 20년 넘게 운영하다, 결국 본업인 목공일로 돌아왔다.

동생도 금호고속에서 일을 하다 퇴직하고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 지금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한국화가로 활동 중이고, 오거리작가협회 부회장 일을 하고 있다”며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손재주가 재산이라고 자랑했다.

이동하 대표의 만호동 사랑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아버지가 통장으로 만호동 일을 계속 해오다 돌아가시면서 주위에서 통장일을 권했다고 한다.
부지런하고 싹싹한 이동하 대표를 주민들이 알아보고 일찍부터 통장으로 추천을 한 것이다.

“통장으로 근무하면서 많은 일을 했었다. 마을 청소는 물론이고, 풍물패활동을 하며 행사 때 마다 흥을 돋우고 기운을 살렸다. 특히 몇 년 전 동 주최로 열었던 해산물상가 축제는 지금도 계속 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축제다. 많은 관광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었는데 지속되지 못해 아쉽다. 또 14년간 자율방범대장을 하면서 지역 치안과 학생들의 탈선을 예방하기 위해 힘썼다. 처음엔  매일 매일 밤이면 나가는 나를 보고 아내가 무척 싫어하고 이해를 못했지만. 지금은 자랑스러워한다” 며 “이젠 본인이 더 열성적으로 만호동 발전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내가 통장을 그만두면서 아내가 현재 통장상조회 총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고 웃었다.

이동하 명예동장은 지역의 발전과 시민들의 어려운 속사정을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통장들의 역할이 참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시민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고, 시와 시민들 사이 가교 역할을 하며 어려운 점을 해결 할 수 있고, 시정에 꼭 필요한 여러 요소들을 가장 잘 파악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포시와 만호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협조가 필요하겠지만 특히 통장들의 밀접하고 세심한 활동이 꼭 필요하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지역 발전을 위한 선도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통장님들이 더 열심히 활동 했으면 한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평범한 시민이면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지역 활동가 이동하대표의 만호동에 대한 외사랑 바이러스가 전염되어 많은 사람에게 감염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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