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옥암 아델리움 경로당 김순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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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옥암 아델리움 경로당 김순심 회장
  • 최지우 기자
  • 승인 2015.08.31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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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어때서~ 난 아직 할일이 많어”
 

77세 노익장과시 자원봉사, 경로당, 노인대학 회장역임
타고난 성실성, 근검절약 기반 2남 2녀 번듯하게 성공
매일 걷기, 향토음식, 남을 위한 희생정신 건강의 비결

“오래 오래 사세요”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서 어르신들을 향한 가장 좋은 덕담으로 자리 잡은 인사말이다. 하지만 요즘엔 오래오래 살라는 말이 딱히 좋은 인사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아무 준비 없이 맞이한 노년은 끔찍한 재앙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자식들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손자 손녀의 재롱에 취해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꿈같은 시절은 이제 몇 몇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특권이 되었다.

2년 전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12.2%를 기록하며, 한국 사회도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세계은행은 한국 인구의 고령화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른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미래준비위원회는 10년 후의 관점에서 분석한 가장 중요한 이슈를 예측한 '미래이슈 분석 보고서'를 통해, 저 출산·초고령화 사회가 2025년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이유다.

이제 노후는 개인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국가나 각 지자체의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각 지자체의 다양한 노인 정책은 예전 아무런 활동 없이 집에서만 생활하던 어르신들에게 다양한 기회와 보람을 제공하고 있으며, 각 단체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은 어르신들에게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세월을 받아들이고,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알차고 값진 황혼을 보내고 있는 어르신들에 대한 찬사와 존경은, 미래 자신들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인생 선구자들에 대한 젊은이들의 당연한 결과이며, 의무이기도 하다.

여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의 귀감이 되며, 존경과 찬사를 받고 있는 어르신에 대한 화제가 잔잔한 미담이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일흔 일곱이라는 겲코 작지 않은 나이에 젊은 사람 못지않은 열정과 노력으로 봉사활동과 재능기부를 하며, 지역사회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목포옥암아델리움 경로당의 김순심 회장.

김순심 회장은 대한노인회 노인자원봉사클럽 팀장으로 활동하며, 단체 봉사는 물론, 지역사회 구석구석을 스스로 찾아다니며 개별 봉사활동도 펼치고 있고, 젊은 사람들도 따기 힘든 ‘소방안전관리자2급자격증’, ‘위험물관리자2급 자격증‘을 74세 최고령으로 획득해 어르신들에게 소방안전과 위험물 교육을 하고 있다.

또 양동교회 노인대학 회장으로 활동하며 어르신들에 대한 권익 보호와  대변인 노릇도 하고 있고, 당신 눈앞에 벌어지는 불의와 부당한 짓을 향해 큰 소리로 호통 치는 정의의 사도 역할도 하고 있다. 

 

김순심회장은 “원래 나에 대해서 자랑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일만 할 뿐인데 쑥스럽다. 내가 세상에서 불이 가장 무섭다고 생각하기에 여러 사람들에게 소방교육을실시 하고 있다. 봉사활동은 일상으로 지역에 살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지역 환경 개선을 위한 개개인의 세세한 노력도 해야 한다. 사람은 검소하고 부지런해야지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길 수가 있는 것이며,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고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얘기했다.

김순심 회장은 젊은 나이에 홀로 되어 2남2녀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낸 장한 어머니로서도  칭송을 받고 있는데 사업가, 교사, 간호사, 통신사 기자 등 번듯한 직장생활을 하며, 어머니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효성으로 주변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

해남이 고향인 김순심 어르신은 소위 인텔리였던 남편과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부농의 막내아들이었지만 유산을 물려받지 못한 채 단칸방에서 신혼을 보냈다.

교사로 근무했던 남편은 집안 살림 보다는 밖에서의 생활을 더 중시해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 살림과 육아는 온통 김순심 어르신의 몫 이였고, 생활하기가 너무 어려워지면서 김어르신은 장사를 시작했다.

학교 앞에서 생활용품과 학용품, 쌀까지 파는 잡화상을 시작으로 제과점, 목욕탕등을 운영하며 많은 돈을 모았다.

“참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었다. 아이를 등에 업고 장사를 했고, 막내는 낳기 하루 전까지 빵을 만들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서 목욕탕 건물을 지었다. 건물 준공 후 얼마 안 있어 남편이 갑자기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위로 두 아이가 대학생 이였고, 막내가 중학생 이였었다. 빚을 낸 상태였기에 막막했다”며 지난 세월을 회상했다.

김어르신의 의지는 그때부터 빛을 발하게 된다.

여자 혼자서 목욕탕을 운영하면서 열관리 기사 자격증을 비롯해 목욕탕 운영에 필요한 제반 자격증을 다 갖추었다. 인건비 절약을 해야만 아이들을 제대로 공부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속 깊고 착한 자녀들은 엄마의 힘든 상황을 이해하고 도왔으며, 지금껏 낭비하지 않고 부지런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김순심 회장의 지금의 영광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평소 몸에 배인 근검절약 정신이 만들어준 것이다. 현재는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지만 여전히 근검절약 하며 젊은이들을 향해 경험으로 터득한 진리를 일깨우고 있다.

“실속도 없으면서 옷만 잘 입으면 뭐 하고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좋은 가방, 좋은 신발 신어봐야 아무 소용없다. 돈을 모으고 부지런해야 한다. 쓰지 않으면 돈은 모이기 마련이다”고 했다.

새벽 5시면 일어나 몇 년 전 쓰러져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며느리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하고, 자신과 가족을 위한 건강식을 만들고 평균 하루 한 시간을 햇빛아래 걷기를 하며 건강을 챙긴다.

“아플 틈이 어디 있나 여기저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도와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 늙었다고 아무것도 안하면 진짜 늙은 것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란 노래도 있지 않은가 난 아직 할 일이 많은 사람이다”고 했다.

타고난 성실과 근검절약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를 이루고 성공적인 자녀교육으로 지역사회 모범이 되고 있는 김순심 어르신의 엄한 꾸지람이 계속 되길 빈다.

최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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