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바른 선조, 후손들은 핍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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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바른 선조, 후손들은 핍박받는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5.09.0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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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계절마다 ‘고전사계(古典四季)’라는 소식지를 간행하여 많은 분들에게 보내줍니다. 며칠 전 올해 여름호가 제게도 왔습니다. 기획기사로 ‘고산 윤선도의 삶과 사상’이라는 글이 특별히 눈에 띄었습니다. 윤선도의 문집인 『고산유고(孤山遺稿)』가 전 4권으로 완역되어 출간되었다는 기쁜 소식에 반가웠습니다. 「오우가」·「어부사시사」·「산중신곡」 등 국문 시가의 작자로 널리 알려진 윤선도의 문집을 읽어보면 국문 시가야 극히 일부분이고 대부분은 한시나 한문으로 쓴 문장들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문집 전체를 읽고 난 뒤라야 고산의 국문 시가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가능해질 것임은 자명한 일입니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큰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옛날 어진 이들의 문집은 대부분 한문으로 된 책이어서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어진 이들에 대한 평가도 매우 편향된 형편입니다. 추사하면 글씨 잘 쓰는 분, 고산하면 국문 시가로 뛰어난 분 정도로만 알고 있으니, 답답한 일입니다. 추사야 다산에 버금가는 실학자요 경학자였으며, 고산은 불의와 부정에 항거한 직신(直臣)이자 죽음을 무릅쓰고 부당한 권력에 항거한 충신으로 여러 차례 귀양살이를 면하지 못했던 우국충정의 지사였습니다. 특히 고산은 기해예송 때에 남인을 대표한 예학자로서 노론과 맞서 당당하게 대항하다 긴긴 유배살이를 했던 투사의 한 분이었습니다.

다산은 고산의 6대 외손이고, 다산의 외가 6촌 형이던 남고(南?) 윤지범(尹持範:1752~1821)은 고산의 직계 6대손이었습니다. 다산과 남고는 친척 사이로 아주 가깝게 지내며 절친한 관계여서 남고가 세상을 떠나자, 그 일대기인 「묘지명」을 지어 그의 일생을 소상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위의 명문(銘文)은 남고가 고산의 후손이었던 이유로, 당시의 집권세력이던 노론의 미움을 받아 문과 급제로 벼슬길이 열렸으나, 제대로 승진도 못 하고 어렵고 힘들게 살아갔던 당시의 사정을 소상하게 밝혀주었습니다. 당쟁이 한창이던 기해예송(己亥禮訟) 때 집권세력의 주장을 그르다고 비판한 고산의 상소 때문에 그 화란이 200년에 이어지면서 고산의 후손들이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권력의 횡포를 다산은 날카롭게 비판하였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권력의 핍박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영구집권을 노리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어서, 반대파들에 대해서는 씨를 말리려는 이유 때문으로 수백 년이 지나도 애초의 반대파 후손들에게까지 소외와 탄압을 계속했었습니다. 친일파들이 득세한 세상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을 박대해야만 하고, 독재세력을 계승한 집권세력은 민주화 운동가나 그 후손들을 냉대하는 것이 그런 이유입니다. 그런 세상의 종말을 원했던 때문인지, 다산은 남인으로서 탄압받았던 남인계 인물들에 대한 일생을 자세하게 알려주는 글을 많이 썼습니다. 언제쯤 그런 탄압의 고리가 끊길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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