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국 vs. 자이니치 - 대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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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 vs. 자이니치 - 대결의 역사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5.12.0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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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니치’의 ‘법·사회·사’

고백컨대 1995년부터 20년 가까이 한일 과거청산의 법적인 측면에 주목하며 활동해온 나에게 ‘자이니치(在日)’는 낯선 존재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박정희 시대에 ‘반일·반공 소년’으로 자란 탓에, 다분히 ‘일본적’이고 어쩌면 ‘북한적’일지도 모르는 자이니치는 나의 ‘한국적’ 내셔널리즘의 프레임 속에 포섭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이니치는 왠지 부채감을 자극하는 존재였다. 접촉하는 기회가 늘면서 그들이 일제 강점의 피해를 당한 동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면에서 항쟁하지 못했던 ‘386’이 평생 곱씹는 그 부채감과 비슷한 응어리를 느끼지 않고서는 자이니치를 대할 수 없었다.

이범준의 『일본제국 vs. 자이니치』는 그 복잡한 자이니치의 다양한 측면을 솜씨 좋게 그려낸 책이다. 앞서 출간한 책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궁리, 2009)와 마찬가지로 발로 뛰며 쓴 책이다.
취재 기간 410일 동안 촬영한 사진이 6240장이고, 역사적인 성격을 고려해 녹음으로 남긴 83시간 32분 46초의 인터뷰를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문자화”했다고 기자 출신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자신 있으면 덤벼보라’는 이야기다.
이 책은 서울과 평양, 도쿄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고, 각 파트에 배치된 주제들은 ‘풍경’과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풍경’에서는 자이니치의 다양한 문제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조선적’은 한국 국적도 북조선 국적도 아닌 것은 물론이고 애당초 국적이 아니며, 단지 조선반도 출신임을 나타내는 기호라는 사실.
조선적 자이니치는 한국법에 따르면 한국 국적이고 북조선법에 따르면 북조선 국적이라는 사실. 자이니치에게는 본명과 통명, 조선식과 일본식, 한국식과 북한식의 수많은 이름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조선총련과 재일민단은 각각의 ‘본국’에 의존하면서 서로를 비방하는 것으로 연명하는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다는 사실. 일본에는 ‘조선학교’, ‘민족학교’, ‘우리학교’는 있지만 자이니치를 위한 ‘한국학교’는 없다는 사실. 자이니치는 일본의 차별과 포섭에 맞서 흔들리는 정체성을 추켜세우기 위해 울고 울며 끊임없이 싸워왔다는 사실.
미우나 고우나 자이니치들을 도와온 사람들은 우리가 아닌 일본인이라는 사실. 일본의 변방인 오키나와에서는 자이니치가 차별당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이니치에게는 민족과 국적 못지않게 일본에서의 삶이라는 실존이 중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대화’에서는 ‘풍경’의 내용을 토대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라고 끊임없이 묻고 있다.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조선적의 강상중을 왜 굳이 한국인이라고 보도하는가? 일본 국적을 가진 ‘손 마사요시’를 왜 굳이 ‘손정의’라고 고쳐 부르는가? 그러면서도 재일민단이 일본 정부에 조선학교에 대한 지원을 하지 말라고 요청하고, 한국 정부가 2008년 이후 조선적 자이니치의 입국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분명히 이 책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의 식민주의와 차별이 자이니치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제목이 『일본제국 vs. 자이니치』이다.

하지만 한국인인 나에게는 분단에 뿌리내리고 있는 ‘한국적 내셔널리즘’에 대한 그러한 도발적인 질문들이 더욱 치명적으로 와 닿는다. 유려한 법사회사를 펼쳐 보이는 책이다. 만만치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간결한 문장들이 물 흐르듯 흐르고 있다.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많은 법령과 한일 양국의 복잡한 소송들을 다루고 있음에도 빈틈을 발견하기 어렵다. 법과 사회와 역사를 꿰뚫는 이해가 없이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을 자유자재로 휘젓고 있다.

일본어와 일본사회에 대한 지식도 깊이가 있다. 국어국문학과 법학, 일본학을 공부한 경험이 있는 저자가 아니고서는 쓰기 어려운 책, 그래서 보기 드문 역작이다. 책을 덮으며 문득 떠올린다. 몇 달 전 한일 과거청산에 관한 글을 일본 잡지에 투고하면서 ‘한반도’라는 단어를 고집했다는 사실을. 저자에 따르면 한국을 제외하고는 쓰이지 않으며 그나마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 본격적으로 나타났다는 이 ‘한반도’라는 단어에 매달리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자이니치를 파고 든 이 책은 “너는 과연 얼마나 ‘너’를 치열하게 물으며 살아왔는가!”라고 질타하고 있다.
<김창록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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