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여객선터미널 목포신안장애인노약자장원봉사센터 이정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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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여객선터미널 목포신안장애인노약자장원봉사센터 이정자씨
  • 최지우
  • 승인 2016.01.20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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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내가 도와 드릴게요”
 

여객선터미널 이용 노약자 장애인 도우미 자청
남편 사별 후 남을 위해 살겠다 결심 봉사시작
세 자녀 후원, 센터 운영 도움, 끝까지 갈 터

가난하고 많이 배우진 못했지만 남편은 아내를 끔찍히 아끼고 사랑했다. 궂은 일, 힘든 일은 남편이 도맡아 했으며, 행여 세상 풍파에 힘들거나 아픔을 겪을 까봐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아내를 지켰다. 아내는 남들과 달랐다. 어리던 날 건강하길 바라며 부모님이 지어온 약을 달여 먹으면서 부작용으로 인해 말소리가 어눌해져, 남들과의 대화에 불편함을 느끼며 수줍음 많았다.

꽃처럼 곱던 아내 젊은 시절의 어느 날 첫눈에 반한 재단사 남편에게 아내의 언어 장애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청운의 꿈으로 가득했던 듬직한 남편은 평생 아내를 보호하고 사랑 하겠노라 맹세하며 인생의 재단을 시작했다. 가난했지만 행복 그 자체였다.  부부의 사랑을 먹고 잘 자라준 초등학교 교사인 큰 딸과 유치원 교사인 작은 딸, 듬직하게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아들까지, 아내는 매일 축복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며 감사했다.

하지만 5년 전 든든한 버팀목 이였던 남편의 갑작스런 폐암 말기 진단으로 투병 중 사망하며 아내의 모든 것을 변하게 했고, 자신만을 위핸 살던 지난날을 접고 남을 위해 봉사하며 나누는 삶을 살게 했다.
사연의 주인공은 목포여객선터미널 앞 목포신안장애인노약자장원봉사센터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섬을 오가는 배를 타고 내리는 노약자나 장애인들의 도우미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정자(61)씨다.

이정자씨는 올해 환갑의 나이로 편안하게 자식들의 편안한 보살핌과 함께 즐기는 노후를 보낼 수도 있지만 자신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명예가 주어지는 일도 아니건만 매일 아침 한 평 크기의 컨테이너 박스인 봉사센터로 출근을 한다.

 
이정자씨는 “섬을 오가는 어르신들이나 장애인들에게 배를 편안히 타고 내릴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커피를 대접하면 내 부모님을 뵙는 것 같다. 별것 아닌 일이지만 배를 오르내리기 힘든 장애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도움이다. 하루 일을 마치면 뿌듯하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딴 생각할 여유도 이유도 없이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이정자씨가  처음 봉사를 결심한 이유는 남편 때문 이였다. 5년 전 남편의 병원 투병 중 보았던 간병인들의 생활 모습을 보며 자신도 병원에서 나가면 남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생활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갑작스렇게 남편이 떠나고 홀로 남았을 때 이정자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상실감과 무력감에 폐인처럼 생활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문득 병원에서 간병하던 간병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루하루 슬픔에 젖어 지내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간병인을 보며 결심했던 순간이 떠올라 목포신안장애인노약자장원봉사센터 센터장님께 무조건 봉사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졸랐다. 처음엔 없다고 하더니 내 진심을 알고 나선 지금의 자리를 주었다. 그렇게 날마다 여기로 나오게 되었고, 섬을 오가는 어르신들에게 꼭 필요한 도우미가 되었다”고 봉사 시작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이정자씨가 김창환 센터장을 처음 만난 건 아이들 학비에 보탬이 되고자 여객선 터미널 청소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남을 위해 헌신하며 봉사하는 김 센터장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고, 청소를 할 때는 자신이 김센터장처럼 이렇게 본격적인 봉사를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여객선 터미널 청소를 하면서 김센터장이 배를 타고 내리는 어르신들과 장애인을 위해 자비로 봉사하는 것을 봤었다. 남다른 분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 당시에는 동참 할 생각을 못했었다.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렇게 내가 이 일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며 처음 자원봉사센터와의 인연에 대해 설명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봉사라는 사명감으로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이정자씨 1남 2녀 자녀들은 엄마가 힘들게 봉사하는 것을 처음엔 반대했다고 한다. 이젠 편하게 대접받으면서 삶을 즐기길 원했지만 엄마의 뜻이 완고해 지금은 가장 든든한 후원자 로 엄마를 돕고 있다. 하지만마음은 가득한데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한다.

“어르신들이 여기 쉼터에 오면 제일 먼저 커피를 찾는다. 여긴 어디의 보조를 받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걸 자비로 해결해야 한다. 가끔 금전적으로 힘들 때면 커피는 사다놓지 말까 생각되지만 어르신들이 많이 좋아하고 찾아서 멈출 수가 없다”라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이정자씨의 새해 가장 큰 소망은 봉사센터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항상 나올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고, 자신의 능력으로 수입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환갑에 자신보다 남을 위한 인생을 살고 있는 이정자씨의 제2의 인생기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최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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