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목포 동시 초대전 여는 김충호 수채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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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목포 동시 초대전 여는 김충호 수채화가
  • 최지우
  • 승인 2016.03.08 15: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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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날의 수채화 그리고 그립다
 

[목포시민신문=최지우기자]지천명을 넘긴 그림쟁이의 하얀 캔버스에는, 봄이 피어나고, 길가의 이름 모를 풀꽃이 주인공이 되고, 지나는 바람을 잠시 붙잡아 보는 이들의 가슴을  휘돌게 하고, 시간을 되살려 그 시절의 기억을 오롯이 추억하고, 연잎에 맺힌 영롱한 이슬방울의 청아한 자태를 영원히 멈추게 한다. 우리의 자랑인 영원한 청년 시인은 별 하나 하나에 마음을 담아 그리움을 표현했고, 세상을 관조하는 영원한 그림쟁이는 붓 터치 한번 한 번에 혼을 실어 그리고 그린다

영원한 그림쟁이로 살고자 대한민국 미술 수재들의 전쟁터이자 화가들의 활동무대인 홍대 앞 미술학원을 접고 고향인 강진으로 귀촌한 김충호 화가.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수채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현재 광주와 목포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그의 전시회는 전남대 치과병원 아크스페이스갤러리에서 다음달 4일까지 열리는 ‘귀로’ 전시회와 이달 말일까지 ‘그리고 그립다’ 란 주제로 목포성옥기념관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으며 천재적인 자질과 화가만의 독특한 감성을 수채화 물감으로 풀어낸 그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 향 Ⅱ 91cm*73cm
작가의 작품 모티브는 어머니와 고향, 그리고 자연이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고향 집이 보이고, 메생이 국 끓여 나를 기다리던 어머니. 윗목에 놓아 둬 살얼음이 앉아 있어도 그저 구수하고 짜릿했던 그 맛, 거칠어 갈라진 손바닥이지만 나를 기다려주시던 그분의 향기가 아직도 코끝 찡하게 그립다. 연어의 회귀련가, 마음 한구석을 맴돌던 고향이 모퉁이를 돌아서면 거기에 있다. 맘껏 안겨 그 향기에 파묻혀 보고 싶은 모퉁이가 거기에 있어 나는 그린다. 그리고 또 그려보던 곳 모퉁이를 돌아서면 보이는 그곳. 그리고 그립던 곳에서 나를 본다.’ 작가노트에 담긴 작가의 마음이다.

이렇듯 그의 그림 속에는 고향이 담겨 있다. 강진의 보물 깅영랑 시인의 모란이, 그가 사랑했던 돌담길이, 천년의 신비 청자가, 강진만의 해안선이, 멀리 보이는 마량 가막섬이 그의 캔버스에서 예술로 승화되어 보는 이들에게 전달된다.  작가는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붓을 놓아 본적이 없었다. 아이들을 지도하면서도 항상 온전한 그림 작업을 갈망했었고. 두려웠다. 어쩔 수 없는 가장이라는 현실에 갖혀 화가로서의 삶은 끝나는 것은 아닌가라는 막연함에 항상 그리움으로 남아있던 고향으로의 귀촌을 결심했다” 며 “전업 작가로 이제 시작이다는 마음으로 여러 활동들을 하고 있다. 아직은 보급이 많이 되어 있지 않은 수채화를 많이 알리고 싶다. 수채화는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무궁무진한 매력이 있다”고.

물감의 번짐이 자연스러운 살아있는 자연을 표현하기 위해 단 한 번의 붓 터치도 허투로 할 수 없는 수채화는 작가의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지만 예상치 못한 물감의 번짐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의도되지 않은 표현의 오묘한 매력에 많은 동호회가 생겨나고 있으며 수채화를 배우는 인구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수채화로 지역 화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김충호 화가는 귀촌 후 지난 2014년 강진 시문학파 기념관 ‘영랑시 시문학공간, 그림으로 소통하다’란 주제로한 5개월간의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끝마쳤고, 문하생들의 모란 작품전시회를 계속 진행 중이며, 미협회원, 광주전남수채화협회 회원, CNN회원, 목포 노적봉 회원으로 후학 양성과 활발한 개인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 처염상정 53cm*36cm
김충화 화가의 지난날은 어땠을까.
김충호 화가는 강진 출신으로 초등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으로 각종 미술대회를 석권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학교와 화실만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오로지 미술만 알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는 것이 가장 큰 꿈 이였다.  홍익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그의 꿈은 더 커져갔다. 유학을 통해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예술혼을 불태우는 화가로 성장하고 싶었다. 그에게 인생의 또 다른 반전이 오기 전까지 그 누구도 그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로 잘 성장할 것이라고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다른 길을 요구했다. 격정의 시절 그에게 운명의 한 사람이 찾아왔고, 몇날 며칠을 고민하며 내린 결론은 사랑 이였다. 이른 결혼과 함께 유학을 접었다. 그렇게 인생의 최대 보물인 딸을 얻었고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를 얻었다. 후회는 없었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항상 그의 마음 허하게 했고, 잿빛도시의 삭막함은 감수성 많은 화가의 눈을 아프게 했다.

“귀촌은 또 한 번 내 인생의 전환 이였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싶었다. 뼈대만 남은 시골집을 구입해서 구석구석 내 손으로 꾸미고 고치기를 5년이다. 요즘엔 사람들이 부러워하지만 땀과 노력으로 만든 것이다. 앞으로도 손 봐야 할 곳이 많지만 차츰 완성해 갈 것이다. 이곳에서 후진 양성과 작품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이 편하게 왔다 쉬어갈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작품들에게도 제 집을 만들어 주고 싶은 소망이 내 마지막 꿈이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오래지 않은 훗날 바람 부는 어느 날에 정이 고프거든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 좋은 그림쟁이가 맞이해줄 소박한 오픈 갤러리를 찾아가 향내 좋은 차 한 잔을 청해보자. 이순에 가까운 멋진 그림쟁이가 환대하며 맞이해 줄 것이다. 

최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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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2016-03-19 14:26:08
아름다운 삶을 살아오셨네요.
가우도 시인학교에서 뵙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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