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클로징 멘트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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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클로징 멘트를 기다리며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6.03.1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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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말하다

2012년 11월 1일, “오늘 시내에 간 김에 위안부 소녀상에 잠시 들러봤습니다. 두툼한 목도리에, 담요에, 하얀 강아지 인형까지 생겼습니다. (중략)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도 안녕하시겠지요? 추위가 찾아왔습니다.” 2012년 7월 3일, “선진사회는 잘 나가는 여성이 얼마나 많은지보다는 그렇지 못한 여성들이 얼마나 보호받고 있는지를 따지는 사회입니다. 피곤한 워킹맘, 고통받는 여성 근로자, 성폭력에 관대한 풍조. 우리나라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2013년 6월 4일, “한 조사를 보니 여름철 쪽방촌 실내 평균온도가 31도였습니다. 밥 지을 시간이 되면 40도에 이릅니다. 이곳 어르신들에겐 더위가 생존의 문제입니다.” 지금 당장의 이야기라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내용들이다. 『뉴스를 말하다』의 저자 김성준 SBS 기자가 앵커 시절, 뉴스를 마무리하며 한 클로징 멘트를 일별해보면 그렇다. 희망보다는 절망이라는 단어가 흔한 시대, 보고 듣고 있자면 한숨만 나오는 뉴스 채널에 오늘도 시청자들이 귀와 눈을 고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많은 기자들이 사건·사고 현장에 달려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20년이 넘게 기자와 뉴스진행자로 일하며 그가 붙들었던 변치 않는 질문은 “반복되는 절망의 뉴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뉴스를 보아야 하는가”이다.

저자는 “세상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데 현장에서 기여하고 싶어서” 기자가 됐다고 한다. 아마도 많은 기자들이 비슷한 이유로, 때로는 험하고 외롭고 고단한 이 일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세상 구석구석의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역사의 현장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먼저 바라보는 이 일이 외롭고 고단한 이유는 어떤 순간 우리는 “희망없는 뉴스”를 만나기 때문이다. 2012년 10월 29일 오후 6시,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어린 남매 둘이 중화상을 입고 결국 숨을 거뒀다. 아이들의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집에 두고 일하러 나간 사이 13살 누나가 남동생에게 라면을 끓여주려다 과열로 불이 난 것이다. 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동생과 그를 지키려던 누나는 사고 현장을 빠져 나올 수 없었고, 남매는 유독가스를 마시고 중태에 빠졌다. 저자는 이 뉴스를 전하며 희망 없는 뉴스에 마음이 불편해졌다고 썼다. 복지 예산 100조 원 시대가 열렸지만 여전히 희망이란 단어는 안개 속에 숨어 있는 것 같고, 삶의 희망이 사라진 현장을 끊임없이 보도해도 역부족이란 생각과 좌절감만 든다는 것이다.

이런 기시감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오래 전 정태춘의 ‘우리들의 죽음’이란 노래로 비슷한 현장을 기억한다. 1990년 3월 9일 서울 마포구의 한 연립주택 지하에서 불이 났다. 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고 안에는 5살, 3살 아이들이 있었다. 가사도우미와 경비원으로 일하던 아이들의 부모가 행여 아이들이 문밖으로 나갔다가 위험한 물건을 만지거나 길을 잃을까봐 문을 잠가놓고 나간 것이다. 인근에서 일하던 부모는 숨이 턱에 닿도록 집으로 달려왔지만 아이들은 작은 손톱으로 열리지 않은 문을 긁고 두드리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저자는 반복되는 가슴 아픈 사고, 재해, 재난을 보도하는 일이 “바위가 다시 굴러 내려올 것을 알면서도 매일 산꼭대기까지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임무와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취재해서 보도해봐야 변하는 게 없을 거라는 자괴감이 재난만큼 위험한 것이라고 경계한다. “비록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 같아도 그게 언론의 임무다. 기자의 취재가 잠들면 부조리는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다. 세상의 그늘은 점점 넓어지고 희망은 점점 줄어든다. 희망이 없는 취재라도 멈추지 말고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외와 폭력의 순간들은 그가 뉴스 스튜디오를 떠난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 낮은 곳을 향하지 않고 특권을 남발하는 정치인들,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가정 등 우리 이웃을 이방인 취급하는 문화 등 사회 곳곳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우리는 오늘 밤, 내일 아침 뉴스를 통해 또 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외면할 것인가.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포기하고 말 것인가. 그가 마지막 뉴스 멘트에 썼듯 “우리는 조금 전진하고 조금은 후퇴”하며 결국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절망으로 점철된 재난 같은 시대의 현장을 들여다보아야만 우리는 변화를 고민하고 좀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그려볼 수 있을 것이므로.
<신소윤 한겨레21 시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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