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 터져 나온 한마디 ‘나는 춤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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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 터져 나온 한마디 ‘나는 춤추고 싶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6.04.1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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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방 평전 ? 하늘이 내린 춤꾼

[목포시민신문] 일찍이 프리드리히 실러는 그의 저서 『‘미학편지』에서 예술작품에 관해 “힘과 활기가 결합된 높은 수준의 평정심과 정신의 자유가 진짜 예술작품입니다.”라고 기록했다.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예술만이 인간을 자유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정과 자유를 예술에 투영한 한국인은 누구인가? 필자는 한 춤꾼의 인물을 추적한 『이매방 평전』을 접하고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많은 무명의 명인들 중에서 빛을 발한 사람이 왜 하필 이매방이었는가? 저자가 제기한 역사적 문맥 속에서 이매방의 삶의 추이를 따라가 보자.

먼저 저자는 우리 춤의 역사를 정리하였다.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모든 궁중 연회를 관장해 오던 예조의 장악원이 1894년에 폐지되고, 1895년 궁내부로 이속되어 장례원에 통폐합되었다. 1897년에 교방사로, 1907년에 장악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그 후 1910년에는 아악대로, 1913년에는 이왕직아악부로 바뀌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함께 소위 ‘권번’이라는 기생조합이 생겨났는데, 권번의 효시인 한성기생조합은 관에 속해 있었던 조선시대의 관기가 해체되던 즈음 관기제도의 폐지에 불만을 품은 기부(妓夫)들이 기녀들을 모아 조직된 조합이었다. 그 밖에 한남권번, 경화권번, 대정권번도 조직되었다. 일제 강점기 권번은 퇴폐적 사회 풍속의 한 측면으로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전통 예술의 전승과 창조를 가능하게 했던 중요한 공간적 측면의 의의가 있었다. 그런 권번에서 이매방은 우리 춤의 전통을 배웠다. 이매방의 어머니는 옆집에 살던 목포 권번장 함국향씨와 의논하여 아버지 몰래 아들을 목포 권번으로 춤 배우러 보냈다. 목포 권번은 6년제였고 인원은 약 30명 정도였는데, 이매방이 유일한 남자학생이었다.

이매방에게 영향을 준 춤꾼의 계보를 살펴보자. 어린 이매방은 목포 권번에서 이대조와 한성준를 통해 전통춤의 세계를 목격하고 입문할 수 있었다. 이매방의 할아버지뻘인 이대조 선생은 호남 일대에서 명성이 높았던 춤의 명인으로서 승무와 북놀이에 탁월한 예인이었다. 목포 권번에서 시작된 이매방의 배움의 여정은 이대조, 박영구, 이창조 등 호남지역에서 명무로 소문난 권번의 여러 스승들을 두루 거치면서 무르익어갔고, 진소홍에게서 배운 살풀이춤의 영향으로 요염한 아름다움이 더해졌다. 그리고 임방울이 인솔하던 ‘명인명창순회 공연’에서의 승무 공연을 통해 조선 민중들의 토착적인 정서를 움직이는 것이 어떤 것인지 현장에서 체험하고 있었다. 그 후 북경에 있던 큰 누나의 주선으로 당대 최고의 경극 배우 매란방의 공연을 접하고 이국적인 향취에 매료되어 그의 제자에게 장검무를 배웠고, 훗날 본명 이규태를 버리고 매방이라는 예명을 지어 사용하게 되었다. 이매방은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여성보다도 요염한 매란방의 화장 모습을 보면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초월한 요염함의 실체에 전율하기도 하였다.

저자는 이매방 춤의 다양한 특징들을 추적했다. 이매방의 춤은 혼으로 추는 춤이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춤이다. 저자는 그 배경을 한국현대사의 굴곡에 숨어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춤에는 그가 한국현대사의 풍랑 속에서 아무 까닭도 모른 채 도피와 도망으로 반응해야 했던 아픔이 배어 있었다. 이매방의 춤에 깃든 여성보다 더 여성적인 아름다움의 극치와 한의 정서는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리고, 그 춤의 미학을 극대화하기 위해 스스로 공연을 위한 옷을 연구하여 지어 입었다. 이매방은 타고난 천재적 춤꾼이지만, 그의 춤 한 사위 한 사위에는 “춤 한 사위를 만 번은 추어야 자유로울 수 있다”는 그의 ‘광기에 가까운 완벽주의’가 기본으로 깔려있다. 그러나 이매방의 한계도 꼬집었는데, 그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후부터 그의 춤이 양식화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고 평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또한 제자가 많아지면서 그의 가르침이 ‘감정이입식’에서 교과서적이며 심지어 교조적으로 변해버리기도 했다며 그를 비판하는 제자가 나오기도 했다. 이매방은 ‘춤꾼’과 ‘교주’의 경계에 서 있었던 것일까?

정신분석학과 기호학의 장점을 살려 이매방을 분석한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다만 좋은 책 안에는 그 다음 읽을 책을 알려주는데, 저자는 정신분석학과 기호학 관련 서적을 제시하지 않았다. 저자가 세상의 비밀을 감춘듯해서 아쉬울 따름이다.

<김영수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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