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해 모항 목포 희망만들기 인문강좌 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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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해 모항 목포 희망만들기 인문강좌 ⑨
  • 정경진 작가
  • 승인 2016.05.26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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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 글쟁이의 맛있는 목포이야기 - 정경진 작가
 

개미진 음식 향토음식 식성으로 통하는 문화공감
식사들 하셨습니까? 차 한 잔 하자. 술 한 잔 하자는 말보다 밥 한번 먹자는 말이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 같죠? 비즈니스가 아닌 가족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먹는 밥, 안 먹으면 죽을 수도 있는 밥을 같이 나눠 먹는 사람을 식구라고 하죠. 먹을 食 입 口….  그런데 똑같은 음식이지만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먹느냐에 따라서 맛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요즘처럼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유행하기 전의 카페나 다방. 커피숍은 후불제였는데요, 혹시 맞선 볼 때, 혹은 첫 데이트 할 때 마신 커피 맛, 기억하는 분 있나요?  이별통보를 받고 마시는 커피는 사약처럼 쓰지만 더 씁쓸한 것은 그 인간이 커피 값도 안 내고 갔을 때죠.

두레밥상의 힘
제 개인적으로 가장 맛있는 밥은 어릴 때 부모님께 야단맞고 나서 먹었던 밥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평생 밥을 못 얻어먹을 지도 모를 잘못을 저질렀을 때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데요, 이게 바로 더불어 먹는 두레밥상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정일근 시인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두레밥상이 그립다.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어머니의 두레판은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
내 꽃밭에 앉는 사람 누군들 귀하지 않겠느냐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펼치시던 두레밥상…
<정일근 시인의 시>

▲지난해 열린 목포항구출제에서 박홍률 목포시장이 목포 특산품인 흑산 홍어를 경매하고 있다
요즘처럼 외식문화가 발전하고, 음식이 풍성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가족 간의 싸움이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성질난다고 나와 봤자 갈 데도 없고, 배회하다 밥 때가 되면 누가 찾으러 오지 않을까 집 쪽을 바라보면서 몬내 몬내 하다 못이기는 척 반드시 집으로 들어가게 되죠. 이때는 초인적으로 후각이 발달하게 됩니다. 집집마다 저녁상에 오르는 음식 냄새가 진동하고 창문 너머로 도란도란 둘러 앉아 밥 먹는 모습을 볼 때의 그 고독….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따로 없습니다. 그렇게 제 발로 집에 들어가면 밥상 앞에서 게임이 끝나죠. 배부르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것처럼 슬그머니 맛있는 반찬을 밀어주기도 하고…. 이때 누군가가 슬쩍 위로의 말을 던져주면 눈물 반 콧물 반…. 밥이 어디로 들어간 지도 모르죠. 그렇듯 그 시절의 밥, 즉 음식은 소통을 넘어서 용서와 화해의 도구이자 공감대 형성의 매개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핵가족 시대에 싱글밥상이 낯설지 않지만 원론적인 것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 인간은 죽기 전까지 뭔가를 먹어야 하고, 심지어 죽어서도 제상을 받습니다… 생전에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을 차리고, 또 음복하면서 추억할 때 그 순간만큼은 돌아가신 분도 함께 있는 셈인데요. 음식에는 기억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음식은 기억이며 맛은 세월의 양념이다!
올해는 5.18 3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일어난 일인데 목포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있었고 그때 저도 참여를 했습니다. 목포 역 광장에서 밤을 새워가며 광주의 현황을 전해 듣고 분노하고 울었던 기억 속에서도 누군가가 보내준 빵과 우유, 또 횃불을 들고 행진을 하던 밤, 더울까봐 누군가가 양동이의 물을 행렬에 뿌려주었던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는데, 벌써 36년 전의 일이라니, 참 세월 빠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포장을 한 빵을 보면 그 봄밤의 기억이 생생이 떠오르며 그 시간 같은 공간을 지키며 같은 음식을 먹었던 분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여전히 우리의 기억은 현재진행 형입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푸르른 날에…. 소설로 시나리오로는 푸대접을 받은 작품이 대한민국 최고의 희곡대상을 받고 우여곡절 끝에 공연되면서 5년 연속 시즌 공연에 5만 명이 관람한 국민연극으로 등극했고 곧 영화화될 예정입니다. 또 광주민중항쟁하면 떠오르는 주먹밥, 눈물 젖은 그 주먹밥은 그냥 밥이 아니라 한 톨의 쌀알이 뭉쳐 단단한 덩어리가 된 민중의 상징이자 저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열린 목포항구축제에서 박지원국회의원이 목포이 명물 세발낙지 경매를 하고 있다
목포 맛의 전도사 기미 작가! 효과적인 사교수단으로서의 음식
타인과 친해지는 데 있어서 가장 빠른 것이 비슷한 식성인 것 같습니다. 같은 음식을 좋아한다는 거…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원초적인 공감대의 힘은고릴라도 노래하게 만듭니다. 독일의 어느 학회에서 연구를 했는데, 고릴라도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 노래를 한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외지인들은 맛의 도시 목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제 주변 분들은 대부분 목포 하면 홍어삼합을 떠올리시더라구요. 음식 좋아하는 기미작가인 제가 그걸 놓칠 수 없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홍어”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작으로 선정되어 서울에서 공연을 했는데, 대박이 난데다 서울연극제에서 상을 휩쓸었습니다. 그러기까지 목포에서 공수한 홍어가 열 박스가 넘지만 돈 아까운 줄 모르고 팍팍 투자~. 먹을 것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을 먹이는 것도 좋아한다는 진리죠.

개미진 맛이란?
“개미지다”라는 말은 오랜 삭힘을 거쳐 나온 ‘야릇하고 곰삭은 맛’의 정의로 깊은 맛을 의미하는 전라도 사투리죠. 이 곰삭은 한의 정서가 연극 ‘홍어’로 탄생한 건데요.

음식의 주술적 의미
하나의 입맛으로 통한 모녀에게 해원의 도구가 된 홍어처럼, 음식에는 긴 세월 인류와 함께  해온 서사의 DNA가 담겨있습니다. 각종 세시풍속 속의 절기음식, 대표적으로 정월대보름에 먹는 부럼이나 귀밝이술, 아홉 가지 나물과 오곡밥 복쌈 등을 들 수 있는데요. 취나물이나 배춧잎 등에 밥을 싸먹는 복쌈은 복이 쌈 싸먹듯이 알차게 들어오라는 의미도 있지만 영양분이 많이 담긴 묵은 나물을 많이 먹어서 건강한 겨울나기를 하라는 의미도 있죠. 그밖에  제상에 올리지 않는 복숭아(불멸의 신 서왕모 등 신선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태몽을 꾸듯 생명력을 상징)와 잉어(성스러운 영물) 소금도 부정한 것을 쫓는 의미가 있습니다.

토박이 글쟁이의 맛있는 문학 
말을 재미있게 잘하는 것처럼  문장은  리듬을 잘 타야 합니다. 매뉴얼이 정해진 전기밥통  밥이 아닌 냄비 밥의 불 조정처럼 작가 고유의 지문인 문체는 작품의 풍미를 더해 주는 젓갈과도 같은 것인데요.

내 인생의 소울푸드,힐링푸드는?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입맛이 있다면 저는 김치국밥을 선택하겠습니다. 저희 할머니가 경상도에서 목포로 이주하셔서 “유일관”이라는 한정식집과 “대구식당”이라는 대중음식점을 명륜동에서 운영하셨는데, 경상도와 전라도 퓨전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임에도 갖은 산해진미 대신 김치국밥이 생각나는 것은 아파서 입맛을 잃었을 때 멸치육수를 내어 끓여주신 할머니의 손맛이 그립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비슷한 맛을 내는 콩나물해장국 집을 찾지만 주재료가 그때처럼 김치와 콩나물이기 때문에 추억을 먹는 기분으로 즐겨먹습니다. 역시 내 인생 최고의 손맛은 우리 할머니 밥상이구요.
작가의 자양분이 되어준 최고의 밥상은 목포 원도심 오거리 밥상입니다. 지금은 옛말이 되었지만 오거리 전성시대였던 시절에는 어느 식당을 가나 반드시 아는 사람 한 둘쯤을 만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서 대화의 장이 열리고, 누군가를 부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밥값을 대신 내주기도 해, 가족적인 분위기가 조성 되었죠. 여기, 그 눈물 나도록 정다운 집 밥 대신 외식에 한눈을 팔게 된 남편에 대한 아내의 독백이 이어집니다.

식성으로 통하는 문화공감
밥상 앞에서는 모든 것이 용서 되는 반면 누군가가 밥상을 엎는 자리는 흔히 말하는 “칼부림”을 언급할 정도로 불행한 끝으로 치 닫을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을 살리기 위한 밥상은 신성한 것이라 생각 되는데요. 오늘 제가 차린 ‘문화’ 라는 모듬밥상을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드셨는지요? 행여 마음에 들지 않고, 변변치 않더라도 이 자리에 모인 분들 모두 식구라 생각하시고, 우연히 길에서 만났을 때 반갑게 식사 한 끼 같이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낭독공연 중 연순 모녀의 홍어와 혜자 씨가 집착해 온 만찬의 공통점은 뭘까요? 바로 사랑이죠? 애증의 관계가 되었을 때도 사랑이 담긴 맛의 진실, 공유하는 식성으로 인해 용서와 화해가 가능한 거였구요. 저는 현재 ‘맛있는 목포’를 ‘멋있는 목포’로 소개하기 위한 다각도의 프로젝트를 추진 중입니다. 출판 및 공연예술은 물론 북경 프리프로덕션 중인 영화 속에 목포의 음식을 소개할 수 있는 장면을 배치해서 관광 콘텐츠 화 할 계획이구요. 근래 들어 작가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여러분과 함께 한 오늘 이 시간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끝으로 문제 하나 낼게요. 음식은 요기꺼리가 아닌 얘기꺼리로서, 저는 죽기 전까지 먹고 죽고 나서도 먹겠습니다.

<프로필>
제7회 목포문학상 본상 수상(희곡)
2014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희곡)
금융보험교육 뮤지컬 시나리오 공모전 우수상 수상(2013)
전국 뮤지컬·연극 대본공모전 대상 수상(2013)
소설 "푸르른 날에 " 등 10여 권의 종이책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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