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땅에서 맑은 샘물이 나오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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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땅에서 맑은 샘물이 나오랴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6.06.0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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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의 다산이야기
▲ 박석무 다산연구소이사장

다산의 저서는 500여 권을 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경학(經學), 즉 철학 관계 저서도 230여 권이 넘지만 경세학(經世學) 관계 저서도 참으로 많은 분량을 남겼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산은 매우 많은 시를 지어 문학적 감동을 고조시키는 문학가로서의 업적도 남겼습니다. 그의 시론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내용은 우국(憂國)·상시(傷時)·분속(憤俗)·권징(勸徵)·미자(美刺)의 시가 아니면 시라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나라를 걱정하고 근심해야 한다는 우국, 시대를 아파하는 상시, 속된 일에 분개해야 한다는 분속, 착함을 권장하고 악함을 징계해야 한다는 권징,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고 꼬집는 미자가 아니고는 시라고 할 수 없다니 현실성을 떠난 관념의 시야 시로 여기지 않는다는 다산의 시론이었습니다.

2,500수가 훨씬 넘는 다산의 시는 대체로 그런 자신의 시론에 근거하여 지은 시가 많습니다. 병든 세상에 대한 치유책이면서 아파하고 고통받는 민중들의 비참한 삶에 대한 대변이자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호소에 가까운 내용들이 가득한 시가 대단히 많습니다.

자신의 뛰어난 제자이자 선승·학승·시승이던 초의선사(草衣禪師)에게 내려준 권면의 글을 보면 시란 어떤 것이고, 어떻게 해야 그런 시를 지을 수 있는가를 자세히 설명해준 내용이 있습니다.

“시란 뜻을 말하는 것이다. 뜻이 본디 야비하고 더러우면 억지로 맑고 고상한 말을 하여도 조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뜻이 본디 편협하고 비루하면 억지로 달통한 말을 하여도 사정(事情)에 절실하지 않게 된다. 시를 배움에 있어 그 뜻을 헤아리지 않는 것은 썩은 땅에서 맑은 샘물을 걸러내는 것 같고, 냄새나는 가죽나무에서 특이한 향기를 구하는 것과 같아서 평생 노력해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늘과 인간, 본성과 천명(天人性命)의 이치를 알고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의 구별을 살펴서 찌꺼기를 걸러 맑고 참됨이 발현되게 하여야 한다.” (「爲草衣僧意洵贈言」)

다시 말하면 유교 철학의 핵심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인심과 도심의 미묘한 한계를 명확히 구별하는 높은 수준의 철학적 사고와 해박한 인간론에 대한 공부가 되어야만 시라는 예술의 높은 경지에 도달된다는 논지를 폈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 진나라 때의 위대한 시인 도연명과 당나라 때의 두보 같은 시인을 예로 들면서 그런 철학적 경지와 인품의 수준에 이르러야만 세상에서 인정받는 시를 지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래전에 북한의 어떤 학자는 다산이야말로 ‘시성(詩聖)’에 이른 분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섣불리 내릴 수 없는 결론이지만 일면 타당성이 있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그런 다산의 결론은 엄중합니다.

“도연명과 두보의 아래에 속해 있는 여러 시인에게도 모두 당할 수 없는 기상과 모방할 수 없는 재사(才思)가 있다. 이는 타고난 것이요, 더구나 배워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글)

수많은 시인들에게 고하는 다산의 경고입니다. 아무나 시를 쓰고 시인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예술가는 타고나야지 노력만으로 최고에 이르기는 불가능하다는 이론, 한 번쯤 새겨야 할 이야기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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