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시사회 -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충동 인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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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사회 -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충동 인류의 미래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6.06.0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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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지금처럼 되었을까?

이 책은 오늘을 사는 평범한 미국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시애틀 동부, 뉴욕시 한복판에 사는 그들의 이야기가 참 익숙하다. 오늘도 사무실 옆자리에 앉아 금융기관에 대출을 알아보던 직장동료, 출근길 전철 앞자리에서 휴대폰에 몰입해 있던 40대 시민, 동네 마트에서 원 플러스 원 제품을 잔뜩 바구니에 담은 채 바쁘게 카트를 밀고 가는 이웃 주민, 인터넷에 접속해 물건을 주문하고 카드로 결제를 하며 효율적이고 빠른 소비에 만족감을 느끼는 ‘나’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저자 폴 로버츠는 나의 일상에 대해 이렇게 물으며 책을 시작한다. “당신은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요?”

카드 한 장만 있으면 무한히 소비하고 그 소비로부터 순간의 만족감을 느끼며 안락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세상이다. 예전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동으로 돈을 먼저 모아야 했지만, 지금은 신용소비가 가능하다. 내일 벌어서, 혹은 1년 벌어서, 그것도 아니면 10년 벌어서 갚으면 된다. 과거엔 가족, 공동체 구성원의 협력과 도움을 얻지 못하면 하루를 살아내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친구와 약속을 잡고 긴 거리를 이동해 마주앉아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다음 위로를 얻는 노력을 해야 했지만 이젠 아니다. 가상공간에 접속해서 간단하게 홀로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 아니 그렇다고 믿는다.

그런데 홀로된 이런 ‘나’들은 게임중독, 쇼핑중독으로 일상을 위협받고, 신용소비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에 이르고 있다. 미디어와 광고, 기업과 시장은 홀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개인들이 이 시대의 표준모델이라고 알려주는데, 정작 그렇지 못한 나는 점점 더 불행해진다. 이 책은 이런 ‘나’들이 현재의 시스템에 대한 부적응자여서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라, 너무나 잘 적응한 결과라고 한다. 이 세계가, 개별 국가가, 내가 사는 경제공동체의 구조가, 나의 안전과 미래를 보장해야 할 정치공동체의 시스템이 이런 ‘나’들을 지속적으로 양산해야만 굴러가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나를 구성하는 이 세계의 모순이 우연적 상황이라고 보지 않는다. 인류 역사 어느 시점부터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사회적 유대와 인내, 절제와 합의를 이끌어내고 유지하려는 노력이 포기되고 순간의 충동과 이를 해결하는 매커니즘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농경사회에 적합했던 인간들의 DNA는 점점 ‘순간적 충동-단기 반응-더 강한 충동’의 반복에 적응해가는 형태로 변형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점점 더 인류의 생존이 불가능해지는 환경, 전 지구적으로 고도성장이 막을 내리는 경제 체제, 당파적으로 갈라진 이미지 정치로 공동체의 장기 지속성이 아닌 순간의 이득을 극대화하는 정치 체제 속에서도 위험감지 능력은 점점 더 퇴화되면서 각자의 토굴에 갇혀가는 개인들. 저자가 그려내는 이 세계의 그림은 이렇듯 파국적인데, 그 서술이 너무나 담담해 더 섬뜩하다.

사실 이 책은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다음에야 서늘해진다. 책의 각 장과 절은 짧은 에피소드와 시공간을 길게 넘나드는 흥미로운 정보, 간결하고 편안한 문체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소주제들은 전혀 낯설지 않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디선가 한 번쯤은 다 들어봤을 이야기들이다.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의 괴리가 낳는 파국적 결말들, 금융이 지배하는 세계가 만들어낸 약탈적 속성과 그 구조에서 신음하는 개인들, 정치공동체의 시민으로서의 자각은 필요 없으니 소비하라, 소비하라, 소비하라고 외치는 정치와 경제 행위자들... 저자는 다만 각각으로 존재하는 이 정보들을 정성스럽게 이어 하나의 퀼트 이불처럼, 모자이크 작품처럼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지, 점점 더 행복하려고 노력하고 소비하는데도 점점 더 불행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만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저자는 시장과 개인의 거리두기를 실천해 보는 것, 시장에서의 일회적 관계가 아닌 밀접한 지역 공동체에서의 사회적 유대를 복원하는 것, 작은 일이라도 함께 요구하고 실천해 보는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 그것이 무엇이든 바뀌길 원한다면 바꾸는 것을 선택할 용기에 대해 생각해 보길 권한다. 나는 저자의 이 제안이 어떤 거대한 기획이 아니라 나의 작은 용기와 실천의 힘을 믿어주어서 더 와 닿는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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