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는 세계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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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는 세계사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6.07.2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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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쿠오바디스

이 책에서 저자는 “역사란, 우리 안의 과거일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정조를 개혁군주의 모범으로 기억하지만, 정조가 사적인 편지로 공적인 정치를 좌지우지할 때 프랑스에서는 왕을 민족 반역자로 처형하는 근대혁명이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소설을 통한 ‘독서혁명’의 가능성을 가로막은 ‘문체반정’으로 공론장의 형성을 막은 정조의 정치의식은 “짐이 곧 국가다”라고 말한 17세기 루이 14세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저자는 정조에 대하여 한국사의 해석을 뛰어넘어 세계사의 시선에서 바라볼 것을 제기한다.

근대의 키워드가 ‘과학’과 ‘진보’였다면, 탈근대의 키워드는 ‘문학’과 ‘개인주의’다. 탈근대 역사이론은 ‘과거로서 역사’에서 ‘역사로서 과거’로 전환하여 대상을 ‘사실’에서 ‘의미’로 바꾸었다. 역사학에서도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는데, 탈근대에서 역사와 문학의 이상적인 만남을 추구하는 서사 양식으로 팩션(faction)이 등장했다. 역사서사(사실서사)는 사실과 허구가 결합한 팩션으로, 사실이 진실이고 허구가 거짓이라는 근대 사실주의 문법의 파괴를 의미한다. 역사서사가 팩션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역사가 사실에 기초했다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역사학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 출발점을 문학과 역사의 차이점에서 시작한다. 역사학이 사실서사를 통해 진실을 밝힌다면, 문학은 허구서사를 통해 진실을 드러낸다. 역사학은 실제 일어난 과거의 사실에 대해 말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과거의 사실을 직접 알 수 없고, 사료라는 매체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역사가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료라는 매체를 타임머신으로 해서만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역사학에서 사료와 기억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과거가 역사로 기억되는 것은 스토리텔링을 통해서다. 기억된 과거만이 역사가 되며,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관계를 세우는 시간성의 성찰을 함축한다. 과거는 신도 못 바꾸는 고정된 실체지만, 역사란 스토리텔링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서사다. 인간은 과거사를 반복해서 역사로 재구성함으로써, 그 시점에 맞는 집단정체성을 만들어 내는 존재다.

다음으로는 역사가의 영원성과 현재성을 포착한다. 역사란 존재의 가벼움을 깨달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집단적 정체성과 연관 지어서 과거와 미래로 연장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다. 역사가는 죽음과 떨어져서 과거에 잠겨 있기 때문에 자신이 좀 더 오래 의식적으로 살기를 바란다. 역사가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실과의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시대 역사담론이 정해 놓은 구조적 조건 속에서 대화한다. 저자는 최근 사극과 역사소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역사가의 노력도 강조한다. 정통사극은 역사적 사실들의 퍼즐 맞추기로 과거의 전모를 복원하고자 노력하고, 픽션사극은 역사적 사실들을 물감으로 사용해 과거의 풍경을 그려 내고자 한다. 역사소설과 사극을 통해 대중은 과거를 느끼고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공감하면서 그들과 인간적인 소통을 한다. 역사에 대한 외경을 갖고 진실을 추구하는 역사가들과 역사를 맘대로 갖고 놀며 즐기는 픽션사극 제작자들이 함께 공존할 필요가 있다.

또한 21세기 한국 역사학의 성찰과 화두를 제시한다. 성찰을 위한 화두가 되는 것이 ‘우리는 어디서 왔고, 누구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이다.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묻는 이 세 질문이 역사라는 시간여행으로 진입하는 길이다. 무엇보다도 21세기 글로벌시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체제를 해체하고, ‘한국사로서 세계사’를 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의 관점과 문제의식으로 하나의 역사를 서술해야 한다.

2014년 필자는 역사대중서를 쓰면서 팩션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역사가가 역사적 상상력과 추정이 아닌 ‘허구’를 사용하면 역사책이 아닌 소설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팩션을 포기했다. 이렇게 되면 역사가와 소설가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너무 낡은 시대, 너무 젊은 영혼으로 세상에 온 사람 짐노페디의 작곡가 에릭사티와 너무 닮았다. 현재 젊은 역사학자도 저자의 역사방법론을 뛰어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독도동해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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