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목포의 아픈역사 기억하기⑤]“세월호 유가족 치유부터 역사공원 조성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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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목포의 아픈역사 기억하기⑤]“세월호 유가족 치유부터 역사공원 조성까지”
  • 김영준
  • 승인 2023.06.2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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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의회 조옥현 도의원
한의사 출신 조옥현 도의원이 2018년 당시, 4년째 세월호 유가족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봉사를 하고있다.

[목포시민신문] 저의 작은 재능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아픔을 달래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한의사 출신 조옥현 도의원이 2018년 당시, 4년째 세월호 유가족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봉사를 한 이유다.

조 의원이 무료 진료를 시작하게 된 배경은 자식의 귀환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조 의원은 "2014416일 오전 TV를 통해 수학여행단을 태운 세월호 사고 소식을 접했는데, 같은 또래의 아들에게서 온라인상의 친구인 단원고 학생이 그 배에 타고 있다는 말을 듣고 멍했다""사고를 당한 학생들의 부모같은 심정으로 다음날 진도 팽목항으로 갔는데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곧바로 진도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진료소에서 의료지원 봉사활동을 한 게 인연이 됐다"고 말했다.

2023, 목포는 여전히 아물지 못한 역사의 생채기를 안고 있다. 9년째 목포신항에 덩그러니 서있는 세월호도 아프다. 차디찬 바닷물에 젖은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올 당시 전국민과 해외 동포들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말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한 사회를 강조하며 싸웠지만 9년째 달라지지 않았다.

74년 전, 목포형무소에는 4·3항쟁 관련자가 가장 많이 갇혀 있었다. 그해 9월 목포형무소 탈옥사건이 일어날 무렵 제주 출신은 600여 명 정도 있었던 것으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2003)에 실려있다.

그 동안 목포형무소와 관련, 한국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중요한 역사 현장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유적지 정비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돼 왔다.

조옥현 도의원은 일제강점기 목포형무소의 역할과 목포권 독립운동가 재조명, 제주4.3항쟁과 여순사건의 아픔이 담긴 현장 유적,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의 공간, 목포 근대건축의 산실인 형무소 독산 이야기 등 독립운동과 해방 후 현대사를 상징하는 역사자원으로 활용할 가치가 큰 만큼 미래 세대에게 우리 지역의 역사를 알리는 공간으로 역사공원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포가 안고 있는 역사의 생채기를 용서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서하지만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평화공원을 만들기 위해 수십년 동안 돈을 모아 땅을 샀다는 말레이시아 바탕칼리 마을 사람들이 위령비에 새긴 글귀다. 1948년 영국군은 공산 게릴라를 색출한다며 바탕칼리 고무나무 농장에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들을 사살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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