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섬의 큰 소리꾼, 장필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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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의 큰 소리꾼, 장필재-3
  • 류용철
  • 승인 2018.06.2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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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지키고 사는 섬의 이야기꾼들의 이야기-①

소댕이섬

[목포시민신문=유용철기자]본보는 신안군 문화원에서 최근 발간한 ‘전통지식의 화수분 섬의 생애사’를 기반으로 김경완 사무국장 도움으로 ‘섬을 지키고 사는 섬의 이야기꾼들의 이야기’시리즈를 마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첫 번째 순서로 신안군 장삼도 부속 섬인 마진도의 장필재 소리꾼이 게재된다. 이어 다음 순서로는 진도 가사도 윤갑율 상여소리 주인공과 김막래 할머니의 이야기가 차례로 총 여섯 차례 게재될 예정이다.

본보는 장필재, 윤갑율, 김막래 등 3명의 진정한 섬의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섬 문화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섬 전통 문화 계승 발전에 대한 대안을 고민해 본다.

<글 싣는 순서>
① 작은 섬의 큰 소리꾼 장필재-1,2,3
② 한 많은 상여소리의 주인공 윤갑율-1,2
③ 악착같이 놀 줄 아는 김막래-1, 2


김양식과 상고선 운영
 

나이롱 극장과 약장수를 끝낸 후 고향 오음리에 돌아온 장필재는 옹색한 삶을 살아야 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없어 남의 땅을 빌려 겨우 농사를 지으며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 부인은 너무 힘들어 몇 번이고 집을 나갈 생각을 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장필재는 여전히 틈만 나면 부잣집 잔치집에 불려나가 소리나 부르면서 한량처럼 살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새로운 일을 하게 된 계기를 만난다. 바로 한참 유행하기 시작한 김양식을 시작한 것이다.

“김수근씨라고 완도에서 지서주임을 하다가 장산에 발령을 왔어. 완도에서는 김을 해서 한참 하는 판이고, 신안 장산은 김을 아직 몰라…. 그런데 그분이 와갖고 장산서 나를 알았제. 하루는 술집에서 술을 먹다가 나를 불러. 술을 한잔 주든만. 장 선생 노래만 이렇게 부르고 다니지 말고 내 말 좀 들으라고 그래. 그래서 나한테 이익이 있으면 듣고 안 그러면 안 듣죠. 그랬제.

그러면서 우리 가족사항을 파악해. 일할 사람이 몇 명인지…. 그래서 거짓말을 할 수 없지…. 사실대로 이야기하니까 김을 좀 해보라고. 그란디 왜정 때 김을 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김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제. 못 한다고도 안하고 한 번 생각해 본다고 하고. 몇 달 뒤에 본께 완도 군내면 사람들이 우리 마을로 김을 하러 왔어. 세 사람이. 그래서는 술을 한 잔 갖다 놓고 그 사람들을 오라고 했단 말이여. 그러면서 소득을 알아 볼라고 한디, 김 한 대 시설을 하면은 논 서마지기 하고는 안 바꾼다.

대를 쪼개 가지고 새내끼로 엮어서 일일이 하는 판인디…. 열대만 하면 30마지기란 말이여. 내 계산이…. 한마지기가 200평인데 600평이지…. 그래서 수근이 한테 가서 김을 하고 싶다고 하고 오음리에서 김을 시작을 했어.

북강에다가 했어. 그란디 거기가 하누바람 아구지여. 완도분네들은 가서 보니까 하누바람을 생각지도 안한 사람들이여. 김이 안돼서 망한 것이 아니라 김이 그렇게 잘됐단 말이여. 겁나게 잘됐어. 대나무가 휘어질 정도로 길었어. 나도 그렇게 길었고…. 그 사람들은 뭐라고 한가니 한 살만 더 놔뒀다가 하면 수확을 본다고 그래. 나는 그 사람들을 따라서만 할라고…. 한번 하누바람이 치니까 몽땅 가세다 몰아 붙여부네…. 그 사람들은 손을 떨고 가불고…. 나는 마진도로 온거야. 김하러….”

김수근씨가 장필재에게 김 양식을 적극 권한 것은 김 양식에 필요한 기본 시설인 ‘마장’을 팔기 위해서였다. 김 양식을 하기 위해서는 갯벌 위에 김발을 설치하기 위한 굵은 소나무 기둥이 필요한데 그것을 파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장필재는 북강에서 김양식에 실패하고, 연고가 없는 마진도에서 김 양식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진지리’라는 해조류가 자라는 곳은 김 양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마진도에서 시작된 김 양식은 대 성공을 거두었다. 채취된 김은 비싼 값으로 일본으로 수출되었기 때문에 큰돈을 벌게 됐다. 그 돈만 잘 간수하거나 투자했다면 좋았을 텐데 생전 해보지 않은 사업에 투자를 하게 된다.

“여기서 김을 해갖고 번 돈을 목포에 투자를 했으면 늘그막에 편히 살았을지도 몰라. 여기가 어장터잖아. 여기서 난 고기를 면민들이 다 먹고도 남았어. 여기가 투망터가 있어. 김서진(현 이장 아버지)씨 묘마니로 둥글둥글하게 돌로 쌓고 그물 매는 말을 세워요. 들물 때는 물심에 일어나고, 고기를 잡는다. 썰물 때는 자빠지면 그물이 눕는다. 세칸 했으까…. 그러면 말은 네 개지….

내가 마진도에 올 때 김서진씨가 땅을 외상으로 줘서 집을 짓게 됐어. 그물을 가운데 장치하고 물이 쓰면 고기를 잡았제. 마진도 투망이라고 하면 유명했어. 그물을 쳤다니까.


마진도 주민들.

목포에서도 장사들이 마진도 투망에서 고기 났다고 하면 다 마진도로 와부러요. 여기서 잡은 고기는 이틀 동안 팔아도 암시랑도 안해. 근데, 목포에서는 배에서 가져와 그날 못 팔면 상해 부러. 얼음도 없는 세상이니까…. 여기는 한 이삼일 팔아도 까딱없어. 그래서 목포에서 고기장사들이 많이 들어왔어. 나도 김 해서 어장 배를 샀어요. 고기 나는 것을 보고. 선원들 보통 여섯이 일곱이 최하 댕겨야 돼. 그라면 그 사람들 선금주고 댓고 가. 흘림배. 병치흘림 유자망이지. 그러면 내가 선금을 주고 데고온디 고기를 잘 잡으면 선금 준 것 빼고 나눠먹어. 못 잡으면 선금을 띠어부러요. 선원들이 똥구멍 피란 놈들이 돈 어디서 내놓겄어. 선금 받고 배 탄디…. 그렇게 3년 하고 나니까 결국은 배를 팔아도 빚을 못 갚을 정도여. 나도 어장에 개념이 없는디. 산중의 어장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을 보고 나는 개념도 없이 해봐야겠다고 하고 덮어놓고 한거야.”

김 양식으로 번 돈으로 배를 사고, 선장과 선원들을 많은 돈을 들여 고용했는데, 정작 선장과 선원들은 선주 눈치만 보면서 바다 속을 모르고 고기를 잡았으니 경제적인 손실이 클 수밖에 없었다.

또, 풍선을 처분하고 기계배를 빌려 상고선을 운영하기도 했다. 상고선은 고기장사를 하는 배인데, 배에 얼음을 싣고 나가 고기 잡는 배를 찾아 현금으로 고기를 사와 어물상에 파는 일이었다. 이때 배 주인인 선주가 기관장으로 따라다녔는데, 가만히 보니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래서 임대료를 높여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상고선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바다를 포기하고 마진도에서 농사만 지으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도 이젠 나이를 먹으면서 몸이 좋지 않다. 가족력으로 천식기가 있어 숨이 가프고 힘들다. 하지만 지금도 소리를 들으면 흥이 나 장단을 맞추며 기운이 나기도 한다.
<신안문화원=김경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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