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도의 닻별들-❷차남수①]목포 소년, 일본 유학길 올라 외과의사의 꿈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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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도의 닻별들-❷차남수①]목포 소년, 일본 유학길 올라 외과의사의 꿈을 품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6.10.0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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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세운 ‘정직·근면·성실’ 평생 좌우명으로
목포공립보통학교 4년 동안 우등상·개근상 받아
열여섯 살에 일본 유학길…유도·웅변·YMCA 활동
규슈대 의학부 진학, 대한민국 외과 전문의 1호의 길

■역사에세이스트 배종덕 작가의 ‘항도의 닻별들’

목포시민신문은 목포항 개항 130주년을 앞두고 역사에세이스트 배종덕 작가의 기획연재 ‘항도의 닻별들’을 연중 게재한다. ‘닻별’은 밤바다에서 항해의 방향을 알려주는 별처럼 목포의 미래를 비추는 인물을 뜻한다. 이번 연재는 언론·정치·의료·영화·문학·미술·산업 등 각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 목포 인물 12명의 삶과 업적을 총 3부로 나눠 조명한다. 단순한 성공담을 넘어 시대적 한계와 도전, 좌절과 성취를 살피며 개방성과 창조성, 문화예술성으로 이어진 ‘목포정신’의 뿌리를 찾아간다. 목포 출신인 배 작가는 목포중.고등학교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하고 MBC PD와 제일기획(삼성그룹) 기획국장 등을 지냈으며, 저서 『나는 일하고 싶다』와 『매향노라 불러온 사람』을 펴냈다. 본지에 휴먼다큐 ‘목포를 사랑한 사람들’을 35회 연재한 그는 이번 연재를 통해 잘못 알려진 기록을 바로잡고 잊힌 인물들의 삶을 오늘의 시민과 미래 세대에게 전할 예정이다.<편집자주>

 

<글 게재 순서>

■제1부 시대의 길을 연 사람들

①김철진(1900~1971)

②차남수(1903~1990)

  • 인사와 유년기
  • 첫발
  • 의료 파수꾼
  • 마지막

③이남규(1901~1976)

④최병우(1924~1958)

■제2부 문화의 항로를 연 사람들

■제3부 생활과 문명을 바꾼 사람들

연재 대상 인물 12인 소개

■ 제1부 시대의 길을 연 사람들

① 김철진(1900~1971)

목포 최초의 조선인 언론인으로 평가받는 사회운동가이자 교육가다. 언론과 교육을 통해 지역사회의 변화와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② 차남수(1903~1990)

대한민국 최초의 외과의사 전문의 면허 1호로, 한국 근대 외과의학의 출발점을 연 의료인이다. 목포 의료 발전과 시민의 건강 증진에 이바지했다.

③ 이남규(1901~1976)

제헌국회의원과 초대 전라남도지사, 참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대한민국 건국과 헌법 제정, 지방행정 및 지역 교육 발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④ 최병우(1924~1958)

대한민국 최초의 종군기자로 불리며 전쟁 현장을 기록한 언론인이다. 언론인 연구·친목단체인 관훈클럽 창립을 주도했으며 취재 현장에서 순직했다.

■ 제2부 문화의 항로를 연 사람들

⑤ 이화삼(1911~미상)

목포 최초의 영화배우로 평가받는 근대 대중예술의 1세대 인물이다. 목포와 서울의 연극·영화 무대에서 활동했으며 6·25전쟁 중 납북된 것으로 알려졌다.

⑥ 이가형(1921~2001)

한국 추리문학과 장르문학의 기반을 넓힌 문학가다. 창작과 번역, 평론 활동을 통해 한국 대중문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⑦ 강대진(1935~1987)

한국영화의 예술성과 가능성을 세계 무대에 알린 영화인이다. 국제영화제 수상을 통해 한국영화의 세계화에 앞장섰다.

⑧ 김영자(1922~2015)

호남 여성 서양화가의 길을 개척한 미술인이다. 여성 예술가의 활동이 제한적이던 시대에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지역 미술의 지평을 넓혔다.

⑨ 오순택(1933~2018)

헐리우드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평가받는 배우다. 영화와 연극, 방송을 넘나들며 한국 배우의 세계 진출 가능성을 보여줬다.

■ 제3부 생활과 문명을 바꾼 사람들

⑩ 정재현(1906~1998)

독창적인 ‘심령서체’를 창시한 서예가로, 체육과 기업 경영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예술과 생활, 사회활동을 아우르며 목포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⑪ 김준형(1914~2008)

대한민국 식기문화와 생활문화의 변화를 이끈 산업인이다. 새로운 제품과 경영 방식으로 시민들의 일상과 식생활 개선에 이바지했다.

⑫ 홍순기(1927~2012)

어망 수출을 통해 세계시장에 도전한 해양산업 혁신가다. 목포 수산업의 기술 발전과 해외시장 개척을 이끌며 지역 산업의 가능성을 넓혔다.

 

차남수(1903-1990) - 의사

(대한민국 외과 의사 전문의 면허 제1호)

고별의 인사

“본인은 생의 마지막 언덕 위에 서서 평소 본인을 아껴 주시고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인사 올립니다. 먼저 88세의 미수까지 생을 누리도록 성은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이 복된 삶을 이어 오는 동안에 지혜와 용기를 베풀어 주신 여러 스승님과 선배님들, 그리고 벗님, 후배 여러분에게도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요,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이라 하였습니다. 한 조각 뜬 구름에 불과한 인생에 종말의 시간이 온다는 것은 천명이요 사람의 숙명일진대, 본인은 기쁜 마음으로 천명에 순응하려 합니다. 본인은 긴 세월 동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따르려 애써 왔으며,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오직 ‘의는 인술’이라는 신념 하나로 살아왔기 때문에 여한은 없습니다. 다만 본인의 마음의 요람이요, 가슴속의 영상이었던 유달산과 정감 두터웠던 목포의 친지 곁을 떠나야 하는 아쉬움과 설움만이 있을 뿐입니다. 본인의 간절하고도 마지막인 기도와 소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 고향 목포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우실 것을 바라는 마음이요, 또 한 가지는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꼭 지켜 주시라는 간곡한 소망입니다. 모든 형제, 자매여 이제 본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부디 안녕히들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1990년 차남수 올림.(김수진, 목포복음교회40년사, p.181)

위 고별인사는 대한민국 외과의사 전문의 면허 제1호(목포시사④터전목포, p.599) 보유자 차남수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 직전에 작성한 내용이다. 고별인사장에는 차남수의 인격과 정체성이 잘 나타나 있다. 고별인사장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고별인사장을 발표한 사람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과, 또 하나는 목포 사람 중에 앞으로 차남수처럼 고별인사장을 발표할 사람이 과연 또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범인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미증유의 일을 벌인 차남수는 과연 어떤 인물이며 어떤 삶을 살았으며 후세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남겼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궁금증 해소를 위해 그의 90여 년의 인생 역정을 1) 출생과 유소년 시절, 2) 일본 유학 시절, 3) 의료인 차남수, 4) 그리스도인 차남수, 5) 목포인 차남수, 6) 남수의 말년, 7) 남수의 유산 등 모두 일곱 마당으로 나누었다. 첫번째 마당인 출생과 유소년 시절부터 한 걸음씩 따라 가 보자.

출생과 유소년 시절

인보(鄰保) 차남수. 인보(鄰保)는 차남수의 아호다. 차남수는 1903년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면 용포리 513번지에서 중농 출신인 아버지 차성술과 어머니 조씨 사이에서 4남 4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형 남진과 남석, 두 명이 있었고 남수 밑으로 남동생 남하가 태어났다. 여자 형제는 4명으로 알려졌으나 신상이 알려진 바가 없다. 남수는 중농이었던 아버지 차성술이 목포 개척자의 한 사람으로 변신하기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농촌 소년이었다. 그러나 남수가 4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막 개항을 마친 목포로 이주하면서 인생 항로가 크게 바뀐다.

삼향면 용포리를 떠나 새로운 개항지 목포로 이주하게 된 남수는 목포 최초의 신식학교인 목포공립보통학교(현 목포북교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이 학교는 그의 한국의 유일한 모교가 된다.

보통학교에 입학한 남수는 어린 나이로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목표 두 가지를 세운다. 하나는 학업을 열심히 해서 우등상을 받아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목표와, 또 하나는 일생의 지침이 될 좌우명을 정하는 일이었다. 목표 달성을 위해 면학에 정진한 남수는 재학 4년 동안(당시 보통학교 학제는 4년제였다) 내내 우등상과 개근상을 받아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린다는 첫 번째 목표를 달성했다. 그리고 두 번째 목표로 설정한 좌우명도 정했다. 좌우명은 정직, 근면, 성실이었다. 남수는 두번째 목표인 좌우명을 실천하기 위해 사망할 때까지 한시도 마음의 끈을 놓지 않았다.(차남수, 나의 모교 시절, 북교 100년사, p.206)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긴 하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사망 직 전에 고별인사장을 발표한 일, 초등학교 때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좌우명을 정하는 일,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을까? 남수의 이러한 모습에서 문득, 미국의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실렸다는 “대통령의 자리에 앉은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미국 제20대 대통령을 지낸 제임스 가필드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남수의 보통학교 시절을 마감하는 시간이 되었다. 1918년 3월 25일, 남수는 4년간의 목포공립보통학교 생활을 마치고 제9회 졸업생(졸업번호279)으로 정들었던 교정을 떠난다. 함께 졸업한 동기로는 야인 김익진(졸업번호 29년)과 강선명(졸업번호 300, 제헌의원 이남규의 전남지사 취임으로 사퇴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됨)이 있었다. 1918년 4월, 새 학기가 시작되자 남수는 목포를 떠나 둘째 형 남석이 유학 중이던 도쿄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일본 유학 시절

남수의 일본 유학 생활은 중등부의 게이카 상업학교 시절, 고등부의 야마구치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대학부의 규슈대학 의학부 시절,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게이카 상업학교(도쿄 소재)에 입학한 남수는 학업 외에 유도와 웅변에 심취하였으며, 교외 활동으로는 기독교청년회(YMCA) 활동과 송진우, 김성수, 현준호 등 호남 출신 유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유학생 친목단체인 호남다화회(일명 호남다도회)에 열심히 참여하였다.

호남다화회는 지방색을 싫어했던 고당 조만식으로부터는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단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지만(고당 조만식 전기, p.62, 고당기념사업회), 남수는 둘째 형님 남석의 이끌림에 따라 열심히 참여했다. 1922년 남수는 대학 진학을 위해 야마구치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야마구치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이던 1923년에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야마구치현은 고향 목포와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어서 학창 시절을 무사히 보낼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해가 바뀌어 1924년이 되었다. 잠룡의 시간이 지나고 승천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 도래했다. 남수는 평소의 꿈이었던 의사가 되기 위해 후쿠오카현에 소재한 일본 최고의 명문대학 중의 하나로 알려진 규슈대학 의학부에 진학한다. 규슈대학에 입학하고 1년이 지난 1925년이 되었다. 1925년은 남수가 눈을 감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결혼식을 올린 경이로운 해다.

결혼

남수는 1925년 8월, 의과대학생의 신분으로 고향 목포의 정명여학교 출신 김사라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평생의 반려자가 된 김사라는 정명여학교 재학 시절에는 테니스 스타 선수였으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이때 사라는 방년 17세였으며 남수는 22세였다. 남수의 회고를 통해 당시의 결혼식장으로 들어가 보자. “1925년 8월, 목포시 양동의 정명 여학교 강당에서는 푸른 눈의 외국인 목사의 주례로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방학을 이용, 잠시 귀국했던 나는 앞, 뒷집에 살며 어렸을 때부터 알아오던 처자와 부모님의 권유로 결혼식을 올렸던 것이다.(김진수, 목포복음교회 40년사, p.92)” 의학도 신랑, 테니스 스타 선수 신부, 푸른 눈의 외국인목사의 주례, 가히 당시로서는 세기의 결혼식이라고 할 만한 남수의 결혼식이었다.

다시 규슈대학 의학부의 의학도 남수 이야기로 돌아가자. 시간은 빠르게 흘러 남수가 의학부에 입학한 지 6년의 세월이 흘렀다. 1930년 3월, 졸업이라는 어려운 문턱을 넘어선 남수는 곧바로 규슈대학 의학부 제2 의과대학 교실에서 3년간의 수련의 과정에 들어간다. 세월은 또 빠르게 지나갔다. 3년간의 고된 수련의 과정도 끝이 나고, 1933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비로소 의사 차남수가 탄생하였다. 미래의 대한민국 외과의사 전문의 면허 제1호 보유자 차남수의 첫 출발은 규슈대학 의학부에서 시작된 것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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