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작가의 집에서 도시 전체로…문학을 도시의 자산으로 만든 법
상태바
[기획] 작가의 집에서 도시 전체로…문학을 도시의 자산으로 만든 법
  • 류정식
  • 승인 2026.11.03 11: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주, 박경리 옛집 보존에서 작가 창작지원·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로 확장
안성, 박두진문학관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금광호수 '박두진 문학길' 조성
목포문학마을, 전시관 건립 넘어 시민·작가·관광 연결하는 문화생태계 구축해야

[목포시민신문' 한국 근현대문학의 산실 목포가 풍부한 문학유산을 지역 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김우진·박화성·차범석·김현 등 문학인의 발자취를 잇는 목포문학마을 조성사업마저 재정난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이에 본지는 기획취재 ‘목포문학마을, 건물이 아닌 도시의 이야기를 짓다’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목포의 사업 추진 실태를 진단하고 원주·통영·하동과 일본 기노사키의 문학관광 현장을 비교 취재한다. 문학유산 보존을 넘어 창작과 주민 참여, 관광과 지역경제를 연결하는 지속 가능한 목포형 문학마을의 성공 조건을 모색한다./편집자주

<글 게재 순서>

① 144억 문학마을 무엇을 남길것인가

❷ 문학도시는 건물이 아닌 사람이 만든다(원주 안성시)

③ 여러 문인을 하나의 도시여행으로(통영시, 하동 평사리)

④ 100년 전 문학에서 오늘의 신작으로(일본 기노사키)

⑤ 목포문학마을 성공 조건은

박경리 선생 옛집 전경.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박경리문학공원에 들어서면 거대한 기념관보다 나무와 정원, 돌담과 산책길이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길을 따라가면 소설가 박경리가 생활했던 옛집이 나타나고 주변으로 박경리 문학의집과 평사리마당, 홍이동산, 용두레벌 등이 이어진다.

경기도 안성시 박두진문학관에서는 또 다른 문학도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적인 건물 안에는 시인 박두진의 연보와 문학적 발자취가 전시돼 있다. 시인의 생애를 연대별로 정리한 전시물은 한국 현대시의 흐름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문학관 밖으로 눈을 돌리면 금광호수에는 시인의 이름을 딴 '박두진 문학길'이 조성돼 있다.

두 도시는 문학유산을 활용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원주는 박경리의 생활공간을 보존하면서 창작지원과 국제 문학도시 정책으로 영역을 넓혔다. 안성은 박두진의 문학을 전시·교육·시민 참여 프로그램으로 확장하고, 자연경관을 활용한 문학 산책길을 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러나 두 도시가 보여주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문학관을 세우는 것으로 사업을 끝내지 않고, 시민이 문학을 경험하고 새로운 창작활동에 참여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박경리의 옛집, 문학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원주 박경리문학공원은 작가의 삶과 작품을 도시공간에 풀어놓은 사례다.

공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새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박경리가 살았던 옛집과 정원이다. 작가가 생활했던 장소를 보존하고 그 주변에 문학의 집과 작품 속 지명을 딴 공간을 배치했다.

방문객은 박경리 문학의 집에서 작가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접한 뒤 옛집으로 향한다. 다시 정원을 지나 평사리마당과 홍이동산, 용두레벌을 만난다. 문학을 전시실 안에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걷고 보고 체험하도록 만든 것이다.

옛집 주변에는 작가가 가꾸었던 생활공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화려한 조형물보다 정원과 나무, 오래된 집이 방문객에게 작가의 삶을 전달한다. 작가가 남긴 생활공간 자체가 문학적 자산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현장에서 확인한 또 다른 특징은 시민 프로그램이다.

공원에는 2026년 전국 청소년 백일장과 시민 참여행사 등을 안내하는 게시물이 설치돼 있었다. 박경리라는 과거의 작가를 기념하는 데 머물지 않고 오늘의 시민과 청소년이 문학을 경험하도록 공간을 활용하고 있었다.

공원 한편의 '패랭이꽃그림책버스'도 주목할 만하다. 폐버스를 활용한 그림책 전문공간으로 2004년 박경리문학공원에 자리 잡았다. 이후 원주에서는 시민과 문화단체, 행정기관 등이 참여하는 그림책 문화가 성장했다.

원주시는 2025년 기준 그림책 전문 활동가 150명 이상이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경리 한 사람의 문학을 보존하는 데서 출발해 어린이와 청소년, 시민의 독서와 창작활동으로 확장된 것이다.

토지문화관 전경.

△토지문화관, 다음 세대의 작가를 키우다

원주의 두 번째 문학정책 축은 토지문화관과 토지문화재단이다.

박경리문학공원이 이미 만들어진 문학을 기억하고 경험하는 장소라면 토지문화관은 새로운 문학을 만드는 장소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토지문화관은 1998년 건축을 완료하고 1999년 개관했다. 2001년 문인 창작실 지원을 시작했고, 2004년에는 예술인으로 지원 대상을 확대했다. 2007년부터는 재외동포와 외국 문화예술인까지 창작실 지원 범위를 넓혔다.

이후 한국문학번역원과 해외 문화예술기관 등과 협력하며 국제적인 문학 교류 기반을 구축했다.

문학도시가 과거 유명 작가의 유산만 전시한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콘텐츠가 낡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로운 작가들이 머물며 작품을 생산하도록 지원하면 문학도시의 콘텐츠는 지속해서 축적될 수 있다.

실제로 원주는 해외 문학 창의도시 작가들의 창작활동에도 토지문화관을 활용했다. 영국 노팅엄의 작가가 토지문화관에 체류하며 집필한 사례도 있다.

이는 문학유산을 보존하는 일과 현재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일이 서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박경리의 문학을 기억하는 공간에서 출발해 다음 세대의 작가를 키우는 공간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 문학을 도시정책으로

원주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박경리와 『토지』라는 문학유산을 도시 전체의 문화정책으로 확대했다.

원주시는 2016년 문학 창의도시 육성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2017년 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2018년 예비도시 단계를 거쳐 2019년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문학 분야에 가입했다.

이 과정에서 박경리의 문학유산뿐 아니라 시민 독서활동, 그림책 문화, 토지문화재단의 작가 레지던시, 민간 문화활동 등을 함께 활용했다.

원주가 보여주는 특징은 문학관과 창작시설, 시민 프로그램을 개별 사업으로만 운영하지 않고 도시 전체의 문화정책으로 연결했다는 점이다. 박경리문학공원은 '보존과 관광', 토지문화관은 '창작과 사람',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는 '도시정책과 국제 네트워크'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담당한다. 문학을 기억하는 공간에서 새로운 문학을 생산하고, 이를 다시 도시 브랜드로 확장하는 구조다.

다만 유네스코 창의도시 지정만으로 문학도시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지속적인 예산과 전문인력, 시민 참여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박두진문학관 전경/ 경기도 안성시 안성맞춤랜드에 자리한 박두진문학관. 2018년 개관한 이곳은 시인의 문학유산을 보존하면서 시민 참여형 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안성 박두진 문학관, 전시 넘어 시민의 창작공간으로

경기도 안성시는 원주와 다른 방식으로 문학자산을 활용하고 있다.

안성시 안성맞춤랜드에 자리한 박두진 문학관은 2018년 11월 개관했다.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문학사상을 알리고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보존하기 위해 설립된 공립 문학관이다.

현장에서 확인한 문학관은 현대적인 건축물과 정원, 야외 조형물이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건물 내부에는 박두진의 생애와 작품활동을 연대별로 소개한 전시물이 설치돼 있었다.

191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인의 삶과 문학적 성과를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돼 있었다. 한국 현대 시에서 박두진이 차지하는 위치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안성이 주목받는 이유는 전시시설을 갖췄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박두진 문학관은 상설 전시와 기획전시 외에도 문학 교육, 지역 축제 연계 행사, 시민 창작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하며 관람객에게 전시 내용을 설명하고, 연령별 교육 프로그램과 지역 문학 진흥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시민이 직접 문학작품을 창작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학관을 작가의 유품을 보관하는 시설이 아니라 시민이 문학을 배우고 생산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운영 성과는 대외적으로도 인정받았다.

박두진문학관은 지난 10월 16일 '2026년 한국문학관 전국대회'에서 최우수문학관으로 선정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지역 문학자원을 활용한 특화사업과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대학과 협력한 기획전시와 문학문화 행사, 시민작가 양성 프로그램 등을 통해 문학관의 기능을 확대한 점이 주목받았다. 안성은 박두진이라는 한 시인의 문학적 유산을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의 문화활동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금광호수 '박두진 문학길', 시를 읽으며 자연을 걷다

안성 문학관광의 또 다른 특징은 시인의 문학을 자연경관과 연결했다는 점이다.

안성시 금광면 금광호수에는 박두진의 이름을 딴 '박두진 문학길'이 조성돼 있다.

호수를 따라 이어지는 약 2.5㎞의 산책로에는 시인의 작품을 소개하는 조형물과 쉼터가 마련돼 있다. 방문객은 호수와 숲을 감상하며 박두진의 문학세계를 접할 수 있다.

산책로 주변에는 하늘전망대와 수변화원, 데크길 등이 조성돼 있어 문학과 자연, 휴식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특히 금광호수는 문학관 전시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시인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장소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문학관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을 걷는 과정에서 우연히 시를 만나고 문학적 감성을 느끼도록 하는 방식이다.

경기도 관광안내 자료도 금광호수의 박두진 문학길을 하늘전망대와 숲길, 수변화원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관광코스로 소개하고 있다.

안성의 이러한 방식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문학치유 관광루트 사업의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문학을 감상하는 활동에 걷기와 자연, 휴식을 결합함으로써 단순한 전시 관람과 다른 관광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목포, 문학관은 있지만 도시와의 연결은 숙제

원주와 안성의 사례를 목포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원주는 박경리라는 세계적인 작가와 『토지』라는 대작을 중심으로 문학정책을 발전시켰다. 안성은 박두진이라는 시인의 문학유산을 시민 프로그램과 자연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반면 목포는 김우진과 박화성, 차범석, 김현 등 한국 근현대문학을 이끌었던 여러 문학인의 삶과 작품을 함께 활용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목포는 갓바위문화타운에 목포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들이 태어나고 성장했으며 문학적 감수성을 키웠던 원도심과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문학과 도시의 역사적 공간을 연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목포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원동 일대에 총사업비 144억6천만원을 투입하는 문학마을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김우진과 박화성, 차범석 등 8명의 문학인을 중심으로 전시공간을 마련하고, 약 1.1㎞의 문학골목과 문학 플랫폼, 체험시설 등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목원동의 오래된 골목과 문학인의 삶을 연결하고, 유달산과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관광 동선을 넓혀야 한다.

목포가 가진 항구와 섬, 유달산과 원도심의 풍경은 문학과 관광을 결합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