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순수 아마추어 통키타 전문 ‘수족관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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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순수 아마추어 통키타 전문 ‘수족관 밴드’
  • 최지우
  • 승인 2017.02.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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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을 주는 사람, 꿈을 먹는 사람 이라오”
▲ 사진위  왼쪽부터 박형기 이사장, 정명자, 김은숙신임총무, 박애정, 손은희,
     사진아래 왼쪽부터 차당식회장, 박춘희, 박인철

[목포시민신문=최지우기자] 처음엔 나 혼자라도 만족하며 즐기며 살아야지 하는 마음 이였다. 나이 먹어서 주책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꼭 한번은 도전해 보고 싶었다. 학창시절부터 꼭 한번 해보고 싶었지만 먹고 사느라, 아이들 키우느라, 짬이 나지 않아 가슴에 묻어두고 힘들 때면 살짝 들여 보며 위안을 받던 이루지 못한 꿈 이였다. 통키타를 치며 노래한다는 것, 그것은 몇 십 년을 벼르고 별러마음먹어야만 할 수 있는 그야말로 꿈 이였다. 

그렇게 가슴속에 아련한 꿈을 안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의 꿈을 끄집어내어 키우기 시작했다. 이젠 더 이상 아련한 꿈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공연도 한다. 나이와 직업은 다 다르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으로 소통하는 30여명이 모여 밴드도 만들었다. 3년째 우리지역은 물론이거니와 전국에서도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수족관 밴드가 그 주인공이다.
 

 

수족관 밴드는 지난 2014년 전남문예재단의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목포 해양수산복합센터 내 횟집주인들에게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문화적 혜택을 주기위한 목적으로 통키타 밴드를 결성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수족관 밴드는 첫해 1기가 30여명으로 시작해 현재 29명의 1기, 2기 멤버가 활동 중이며 현재 3기 회원을 모집 중이다. 

매년 연말이면 쌀 나눔 행사도 개최한다. 쌀 나눔 기금은 매월 지도비로 나온 금액을 모았다가 회원들과 힘을 합쳐서 하는 것이라 더 뜻이 깊다. 좋아하는 취미생활로 자신들만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고 있는 수족관 밴드 주인공들을 만났다.
 

▲ 뮤지컬 항순이의 목포 공연 모습

수족관 배드 1기 멤버인 박애정 전 총무는 “기타가 다른 악기보다 접하기가 쉽고 배우기가 쉬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횟집 관련 종사자들만 모였지만 지금은 북항동민들을 상대로 3기를 모집하고 있다. 처음 기초부터 시작했지만 현재는 멜로디와 연주 가능할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며 “우리 수족관 밴드는 해마다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행사를 한다. 첫해는 어부사시가로 음반을 제작했고 2회 때는 항구어라 합창단과 콜라보 형식으로 공연을 했다. 작년에는 ‘항숙이의 목포’라는 뮤지컬을 올렸다”고 그동안의 활동을 소개했다. 
 
'항숙이의 목포'는 각본, 각색, 연주, 연기, 모든 것을 수족관 밴드 단원들이 맡아서 했다.
 서산동 조금새끼로 태어나 목포를 지키며 살아가는 항숙이에 대한 이야기를 뮤지컬로 꾸몄다. 순수 일반인들로 구성된 통키타 밴드의 특별한 공연은 지역사회 이슈가 되면서 화제로 떠올랐다. 2016년 9월에는 중국에서 개최된 세계녹색기후기구 포럼 행사장에 초청 공연도 다녀왔다. 수볻관 밴드가 성공적인 시민동호회로 알려 지면서 초청을 받은 것이다. 3박4일 일정으로 포럼 마지막 공연을 하며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음악을 통해서 문화를 전달하는 기회인거 같아서 뿌듯했다. 일반인으로서 느꼈던 감격과 감동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 쌀 나눔 행사 공연 모습

횟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1기로 수조관 밴드를 시작한 손은희씨는 “원래 아가씨 때 기타를 배웠지만 결혼하고는 하지 못했었다. 취미생활로 했는데 공연을 하게 되면서 성취감과 하면 된다는 가능성을 느끼게 되었다. 집에서도 엄마가 즐거우면 집안이 행복하다고 하지 않는가. 집에서도 많은 호응을 해주고 있다”고 자랑했다.
 
김은숙 신임총무는: 현재 주부다. 친구 소개로 들어와서 꾸준히 연주생활을 하고 있다. 왕초보였지만 기초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공연까지 하고 있다.
 “내가 원래 성격이 소극적으로 앞에 나서지를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연주를 하고 공연을 하면서 이젠 마이크 욕심을 낼 정도의 의욕과 열심히 하고 싶은 열망도 가득하다. 밴드가 나를 변화 시키고 내 인생을 변화 시켰다고 할 수 있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친구들도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남편은 처음에 나가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좋은 기타를 사주면서 응원을 해준다. 
 

▲ 중국 세계녹색기후기구 초청 공연 모습

전명자씨는 현재 북항 회타운에서 ‘비금 횟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야말로 수족관 밴드에 걸 맞는 맞춤 인재다. 그녀는 결혼 전 키타와 드럼을 치며 잘 나가던 직업 음악인이었다. 결혼해서 아이들 키우고 남편 뒤바라지 하면서 가슴에 음악을 묻고 살았다. 음악을 접었지만 항상 음악에 대한 미련은 남아 있었다. 3년 전 갑작스런 사고로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심한 우울증으로 힘들었다.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친구가 수족관밴드를 소개했고 음악을 다시 시작하며 힘든 기억도 잊고 생활의 활력을 되찾게 되었다.

 “수족관 밴드는 나에게 힐링 자체다. 치유와 위로를 받으며 힘든 시기를 잘 넘길 수 있게 했다. 제2의 인생을 선물해준 고마운 밴드다”며 아픈 지난날을 들려줬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박인철씨는 수족관 밴드에서 제2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은퇴 후 드럼을 연주하며 수족관 밴드의 객원 멤버로 반주를 넣어 주다 이젠 정식 단원이 된 것이다. 그는 친구들의 부러움 대상 1호다. 매일 젊어지며 연주활동을 하며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있게 사람들에게 음악을 하라고 권한다. 아픔 치유도 되고 면역력도 생기고 매일 매일이 즐겁고 행복하다기 때문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 대불산단 공연 모습

박춘희씨의 사연은 남다르다. 38년째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61세의 현직 미용사다. 키타는 아가씨 때부터 오빠들을 보면서 하고 싶었지만 꿈 이였다.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현실적으로 할 수가 없었다. 열심히 일만 하며 살았다.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마음 둘 데가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수족관 밴드 소개를 받고 들어오게 되었다. 젊은 친구들하고 음악을 같이 하면서 마음 치유가 되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자영업이다 보니 낮에 연습하러 나오는 자체가 무척이나 어렵다. 하지만 욕심이 많고,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보니 매주 연습에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다.

수족밴드의 회장 차당식씨는 농부다. 젊은 시절 북항에서 20여 년간 횟집을 하다 정리하고 다른 일을 하던 중 무화과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동사무소에 수족관밴드 2기 모집광고를 합류하게 되었다. 키타는 젊은 시절부터 꿈 이였다. 가장이였기에 생활에 쫒기다 보니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작년 뮤지컬공연에서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다. 노래하면서 연주하면서 연기를 한다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앞으로도 회원들 간 단합하면서 열심히 배워나가는 것이 나의 계획이자 꿈이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수족관 밴드를 기획하고 지도하고 있는 (사)문화사업진흥회 박형기이사장은 “순수아마추어 일반인들이 이렇게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민간단체로 이렇게 꾸준히 유지해 나가는 단체도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알고 있다. 2017년도에는 버스킹 공연을 준비 중이다. 평화광장과, 노을공원, 유달산에서의 공연과 인근지역인 무안이나 강진 장흥 등에서의 공연도 생각중이다. 짬짬이 요양원공연은 기본으로 할 것이다. 작년 중국에 이어 몽골공연도 기획하고 있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나이도 직업도 다 다른 순수 일반인들이 좋아하고 원하던 음악으로 뭉쳐 상상도 하지 못할 결과를 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진부한 그 말이 그들에게는 현실이 됐고 증거가 되었다. 그렇다 꿈은 이루어 진다.
최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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