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도, 이제 이야기를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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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도, 이제 이야기를 시작할 때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7.02.2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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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국 회장(사회적기업 목포연합회)

목포에서 요즘 가장 ‘핫’한 곳을 뽑으라면 단연 고하도다. 유달산과 고하도를 연결하는 케이블카가 예정대로라면 내년에 운행이 시작된다. 422억이 투입되는 국책사업인 호남권생물자원관도 고하도에 터를 잡는다. 여기에 목포시가 추진하는 해안힐링랜드, 리조트 건설사업등이 가시화된다면 고하도는 말 그대로 상전벽해의 ‘핫 플레이스’가 될 전망이다. 목포시로서는 고하도 집중전략이 체류형 관광도시 전환의 성패를 가를 중요한 가늠자가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급물살을 탄 고하도 개발이 하드웨어 중심으로 흘러가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소프트웨어의 빈곤은 결국 반짝 호황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가치를 만드는 힘, 스토리텔링

 이 때문에 주목되는 것이 바로 고하도 스토리텔링이다. 문화산업 영역에서 스토리텔링이 가지는 힘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스토리텔링의 교과서적 사례로 꼽히는 것이 일본의 ‘합격사과’다.
 1991년 일본의 아오모리현. 하필 사과 수확철에 태풍이 몰아쳤다. 사과 90%가 태풍에 떨어졌고 그나마 나무에 간신히 걸려 있던 사과들조차 태풍 탓인지 맛이 형편없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 농부가 아이디어를 냈다. 이 농부는 나무에 붙어 있는 사과들이 ‘풍속 53.9m의 강풍에도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사과’였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리고 이 사과가 합격의 행운을 가져올 수 있다는 스토리를 입히기 시작했다. 우리처럼 대학입시가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일본에서 이 합격사과는 대히트를 쳤다. 무려 기존 사과가격의 10배가 넘는 가격에도 사과는 날개 돋치듯 팔려나갔다. 상품과 결합된 강렬한 인상은 믿을 수 없는 가치를 창출한다.

고하도는 스토리텔링의 보물창고
 
 고하도는 스토리텔링의 보고다. 고하도의 다른 이름은 보화도(寶花島), 보물꽃섬이다. 이순신 장군은 고하도의 가치를 미리 알아봤다. 1597년, 기적의 명량해전이후 이순신의 고민은 왜적의 서해진출 저지였다. 급한 불은 껐지만 호남 곡창으로 가는 영산강의 길목을 터준다면 전쟁의 성패는 알 수 없는 터였다. 전라도수호와 서해진출 저지를 위한 길목에 ‘빗장’이 필요했다. 영산강의 길목에서 다도해의 거친물결을 막아선 ‘빗장섬’, 그곳이 바로 천혜의 요지 고하도였다. 그곳에서 이순신은 108일의 시간을 보냈고 수군재건과 7년전쟁의 마지막 승리를 위한 전략을 가다듬었다. 조선민중에게 고하도는 ‘부활의 섬’이었고 이순신에게 고하도는 ‘108번뇌’의 시공간이었다. 평화를 꿈꾸며 백성은 소금을 구웠고, 이순신은 고하도에 지천으로 널린 소나무로 판옥선을 만들었다.
 보물섬의 가치를 알아봤음일까? 1897년 목포가 개항하자 일본과 러시아 정부는 요지중에 요지인 고하도 확보를 위해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첩보전을 펼쳤고 러시아는 목포에 군함을 출격시켜 러일간의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순신이 목숨으로 사수했던 고하도는 결국 정확히 ‘3백년’만에 열강이 군침을 흘리는 이권의 각축장으로 침탈됐다.

‘반성과 화해의 섬’ 고하도

 한일관계가 유래없는 파국으로 치닫는 지금, 고하도는 ‘반성과 화해’의 섬이다. 고하도에 산재한 20여개 정도의 인공동굴은 끔직한 전쟁 유적이다. 2차세계대전이 일본의 패배로 기울무렵 미치광이 일본군사지도부는 본토사수를 외치며 하늘에선 ‘가미가제’를 띄웠고 바다에선 ‘카이텐’이라 불리는 인간 어뢰정을 띄워 미군 함정에 대한 자살공격을 감행했다. 조선인은 자살공격에 동원되거나 강제징용돼 곡괭이 한자루로 동굴을 팠다. 바로 그 카이텐의 출격장소가 고하도 동굴이었다.
 그러나 미치광이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제 치하인 1928년에 일본인 윤학자 여사와 윤치호 전도사 부부가 7명의 고아를 데리고 고하도에 공생원(共生院)을 설립한다. 조선인 고아들에 대한 일본인 부부의 헌신적인 사랑은 국경을 뛰어넘었다. 1968년 윤학자 여사가 작고하자 목포시 역사상 최초로 목포시민장으로 열린 장례식장에는 시민들이 3만 명이나 몰렸다. 한일간의 ‘공생’은 지금 살얼음판 같은 동북아 정세에서 임진왜란이후 4백년을 뛰어넘는 잊지말아야 할 가치다.

어머니의 사랑, ‘목화꽃’

 윤학자여사의 삶은 고하도의 꽃, 바로 ‘목화’와도 연결된다. 최근 한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긴 하지만 목화의 꽃말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다. 고하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육지면 시배지였다. 일제 강점기 목포항은 소금과 쌀, 그리고 목화로 이어지는 ‘삼백’, 그 수탈의 현장이었다. 아픈 역사다. 그러나 이러한 아픔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는 것도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고하도, 보물의 꽃섬 고하도가 세계의 손님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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