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랜드 : 재미와 놀이가 어떻게 세상을 창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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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랜드 : 재미와 놀이가 어떻게 세상을 창조했을까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7.05.0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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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도 재미와 놀이가 없다면 신기루

요즘 무척이나 도도한 4차 산업혁명 물결을 보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각은 좀 찜찜하다. 가령 M.A.R.S.라고 하는 혼합현실(Mixed Reality)과 인공지능(AI), 로봇(Robot), 소프트웨어(Software)라는 4차 산업혁명 키워드는 기술이 결정하는 트렌드 일색이다. 이공계가 리드하는대로 문과는 그냥 따라가고 밀려가야 한다는 못마땅함이 깊어만 가고 있다.

이런 불편함을 한 판 뒤집기 하는 시원한 콘텐츠를 「원더랜드」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4차 산업혁명이 비등점에 와 끓어오르기까지 차오른 과학사가 의외의 동력인 재미와 놀이로 이어져왔음을 들추어 보여준다. 인간이 무언가에 탐닉하는 몰입과 집중이 설령 쓸데없는 짓일지라도 언젠가는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발명이 되고 창의성을 퍼뜨린다는 것이다.

신비한 바다달팽이 뮤렉스가 고혹적인 보랏빛 염료가 되어 유럽에서 자주색 패션 혁명을 일으킨 것도 결국 인간의 집착에서 비롯되었다. 색다르고 신비한 희소성과 우월성에 넋을 잃고 마는 사람의 본성이 있었기에 기술혁신도 산업 발전도 가능했다. 인간이 티리언 퍼플 염료에 매료되어 휘감긴 심미적 가치를 무시하고서 신기술 개발이나 시장 개척, 백화점 같은 근대적 업태 탄생을 설명할 수 없다는 얘기다.

재미와 놀이를 탐하는 도전은 1956년 미국 사우스데일 센터와 같은 최초의 쇼핑몰도 만들었다. 더 많은 놀라움과 신기함, 색다름을 원했던 디즈니는 아예 도시전체를 놀이공원으로 만드는 디즈니월드를 구상했다. 시장 점유율이나 매출, 수익이 아닌 소프트 파워 지표들 즉, 재미와 놀이 크기를 키우기 위한 열정과 무모한 도전들이 오늘날 4차 산업혁명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기술 발전과 문명의 바벨탑을 쌓아 올렸다는 것이다.

더 놀라게 하고 더 미치도록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인류는 역사 초기부터 뚜렷한 이득도 없는 음악에 매달렸다. 기원전 3만3천 년 전 것으로 보이는 뼈로 만든 피리에서부터 인간의 장난과 일탈, 탐닉은 멈춘 적이 없다. 음악이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색달랐기 때문에 탄생했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음악이 없어도 삶은 존재하지만 음악 프로그래밍과 알고리즘에 대한 끊임없는 탐닉이 곧 놀이 규칙을 만들고 디지털, 스마트 놀이 머신을 만들게 되었다. 클로즈업 기법으로 세상을 홀린 영화도, 반도체산업 정도는 내려다볼 정도로 폭풍 성장한 컴퓨터 게임도 원더랜드와 다를 바 없다.

놀이는 새로움과 경이로움을 먹고 사는 나무이기도 하다. 체스가 인도 고대 게임인 차투랑가에서 나와 서양에서 여러 국가와 계층, 개인 협업을 통해 점차 전략적 게임으로 다듬어진 과정도 탐구욕과 집단지성을 촉발했다. 주사위, 고무공 놀이도 이집트와 마야 문명에서 발원해 게임의 무작위성과 확률이론을 끄집어냈고 결국 <우주전쟁!> 같은 기념비적 컴퓨팅 게임을 탄생시켰다. 당시 과학자들의 하부 문화에 불과했던 게임은 이윽고 놀이 본능을 건드리면서 IBM 왓슨, 구글 알파고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 신세계를 열게 된다. 더 나아가 저자는 인간과 함께 노는 기계를 꿈꾼다. 기계와 기술이 인간을 복속시키는 잿빛 디스토피아는 없다고 예측한다. 상상력, 창의성 없는 디지털, 스마트 문명은 인간의 놀이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펍(pub)도 뮤지엄도 여흥과 민주주의 장으로 발달해왔다. 계몽주의, 성적 해방, 독립운동도 커피 하우스 같은 색다른 놀이터에서 움텄다. 아무리 4차 산업혁명이 무겁고 비인간적이라 하더라도 결국 오락실, 놀이터가 아니면 인간 세상은 작동하지 않을 거라는 낙관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문명은 놀이에서 생성되어 전개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놀이가 생산성을 지배할 것인지를 숙고해야할 때가 왔다. 지금처럼 놀이는커녕 숨 돌릴 틈도 없이 쏟아지는 4차 산업혁명 굉음 속에서 좀 풀어 헤치고 놀아보자는 인간 본능이 존중될 수 있을까?

저자는 이에 명랑하게 응수한다.“기계가 인간을 종 부리듯 하는 암울한 미래를 걱정한다. 그런 걱정은 번지수가 틀렸는지도 모른다. 기계가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할 미래를 걱정할 게 아니라 기계가 놀이에 맛들이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그 점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심상민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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