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과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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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과 이념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7.05.1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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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찬 (숭실대학교 법과대학 겸임교수(법학 박사))
 

권력이 있는 곳이면 항상 나타났던 붕당이 권력의 독점을 위하여 뜻을 함께하는 집단이라면, 정당은 정치적 의사를 같이 하는 사람들의 집합이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다수 정당이 공존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하고 복수정당제는 민주주의의 요체로서 헌법적 보장을 받는다.
 
근대 정당의 효시인 영국 보수당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영국 정치세력의 중심에 서 있다. 한국 사람의 시각에서 영국 정당을 해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이 책은 수많은 문헌을 통해 영국 보수당의 이론적 기반을 분석하고 역사적 발전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정당의 생성과 발전, 그리고 역할에 대한 담론을 펼치고 있다.
 
보수주의는 인위적 조작과 실험을 거쳐 역사가 진보한다는 가능성 자체에 회의와 불신을 보내는 데서 출발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보수의 큰 자리를 정통 기독교 집단이 메우고 있는 것도 인본주의적 사고에 대한 배척에서 비롯된 것이다. 변화가 좋은 것이 아니라는 인식은 인간 이성에 의한 역사발전까지도 백안시한다. 보수주의가 상정하는 인간상은 인습과 제도 속에서 위계질서와 유기체적 구조를 가진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국가에 대한 충성을 유달리 강조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반공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정당이 보수 일색이었던 것을 상기시킨다. 해방전후사에 대한 평가에서 보수적 입장을 견지했던 저자는 영국 보수당에 대하여도 우호적 시각에서 서술을 이어간다.
 
영국에서 보수당은 자유당과 오랜 경쟁을 벌이면서 성장해 왔다. 자유당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데서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생기며 국가는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개인에게 간섭·개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자유당을 대체한 노동당이 국가의 개입을 확대하고 복지시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과 대조되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당 역시 자유당과 유사하게 개인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국가의 개입은 작을수록 좋다는 견해를 가졌다. 결국 영국의 정당제도 발전 초기에 보수당과 자유당은 구분이 모호한 점도 있었으며 이는 최근에 와서 보수당이 대처리즘이나 신자유주의를 주창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보수당과 자유당은 정책이나 이념의 각론에서는 서로 다른 해법을 내놓고 경쟁해 왔지만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국민의 의중을 정책에 반영하는데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혼란과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선거권 확대에서 보수당이 앞장 선 것도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당이 권력을 획득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국은 양당제의 틀 안에서 정권을 주고받았는데 이는 소선구제에 기반을 둔 것으로 대륙의 비례대표제에서 비롯된 다당제처럼 다양한 국민들의 의사를 집합적으로 반영할 조직을 마련하는 데는 적합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양대 정당은 당내에서 다양한 색깔을 허용하였으며 심지어는 당 자체의 색깔도 시대에 따라 변모를 거듭했다.
 
공산당이 기성체제에 위협을 가하자 영국은 국가 주도의 사회복지 확충과 노동운동의 보장으로 대처하였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국가 성장 동력 약화와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자 영국병 치유를 내세운 대처리즘이 등장하였다. 저자는 대처리즘에 대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후하게 평가하고 있지만, 그 후 대처리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토니 블레어가 제3의 길을 제시하는 등 영국 정치는 정당 간의 갈등과 대립 속에 끊임없이 변화와 쇄신을 거듭하였다는 데는 인색함을 보여준다.
 
토리당에서 출발하여 400년이 넘도록 영국의 정치무대를 지켜온 보수당의 생명력도 유연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고 보수당이 당명만 지켜온 것이 아니고 고유한 이념적 정체성을 지키고자 노력을 기울여 온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보수당은 비록 선거에 패할지라도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 공동체적 연대, 애국심의 강조 등 일관된 정책기조를 유지하여 왔다는 것이다. 보수란 단어가 수구와 동의어가 되고 진보를 자처하는 집단까지도 권력을 기득권화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며 지역주의 연고주의에 얽매여 있는 우리 사회에 영국 보수당의 역사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조성찬 숭실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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