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는 무렵의 꿈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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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는 무렵의 꿈과 희망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7.05.2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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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은 병신(丙申)년으로 재위 52년째를 맞은 영조대왕이 83세라는 장수를 누리고 붕어한 해였습니다. 이미 죽은 때가 오래이던 사도세자는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고, 마침내 25세의 세손 정조가 임금의 보위에 올랐습니다. 이해에 다산 정약용은 15세의 새파란 나이로 서울 회현동의 풍산 홍 씨 댁으로 장가들어 아내를 맞이하고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정조가 재위 1년을 맞는 1777년은 정유(丁酉)년으로 16세의 다산은 꿈과 희망이 가슴에 부풀어 오르던 때였습니다.

기다리다 지치고 지쳐서 지루하기 그지없던 52년의 장기집권에 신물 나던 백성들에게 샛별만큼의 맑음이 보이던 무렵입니다. 노론과 소론이라는 당파가 권력을 독차지하고 그 이외의 모든 당파는 소외되어 권력에서 배제된 때인데, 노론 벽파의 음모와 비계로 생죽음을 당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에 한을 풀지 못한 정조의 등극은 권력의 변동을 예견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더구나 정조의 등극 후 제일성이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폭탄선언이 나오자 기를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살아가던 남인들은 새 세상에 대한 기대를 크게 지닐 수 있었습니다. 남인 가계에 속하던 다산 또한 큰 꿈을 꾸고 있었음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다산의 연보인 『사암선생연보』 16세 항목의 기사에“성호 이익의 유고를 처음으로 보았다. 이때 일세의 후학들이 성호 선생의 학문을 조술(祖述)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는데, 다산도 이를 준칙으로 삼았다. 자식이나 조카들에게 항상 말하기를 ‘나의 큰 꿈의 대부분은 성호 선생을 사숙하는 가운데 깨쳐진 것이 많았다’고 하였다”라는 대목에서 보이듯 당시로서는 진보적이던 성호 학문에 세상의 관심이 쏠리고 있었음을 넌지시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노론과 소론의 보수적 논리에 묶여 있던 사상계의 방향이 남인계의 진보적 주장으로 옮겨져 가고 있음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조선왕조 27명의 임금 가운데 가장 오래 집권하고, 가장 장수를 누린 영조의 죽음과 청년 임금 정조의 등극, 판치던 보수정치가 그래도 조금은 진보적 논리로 바뀌어가던 즈음, 어쩌면 수구 보수의 구시대 정권의 대통령이 파면당하고, 그래도 조금은 진보적인 정치가 펼쳐지려는 오늘의 현실과는 유사한 경향이 많았던 때로 보여 집니다. 새마을운동, 유신독재, 극단의 반공 논리가 민주주의를 숨죽이게 하다가 촛불의 민심을 반영하려는 새로운 정권에 우리 모두가 기를 펴고 꿈과 희망을 지니던 것과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안보 장사와 친북좌파 타도라는 반시대적이고 반역사적인 불통의 정권과 그 부역세력과는 영원히 결별하는 새로운 정치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국민과의 소통을 제대로 하고 인재다운 인재들을 제대로 등용하여 먹고 살기에 걱정 없는 정치만 해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꿈과 희망에 들떠 있는 국민들의 간절한 마음을 헤아려 더 이상은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기만을 바라고 바랄 뿐입니다. 정조의 치세 24년이 오늘에 다시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조와 다산이 손을 맞잡고 새로운 시대를 열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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