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 목포에게 일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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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 목포에게 일본은 무엇인가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9.08.2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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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의 김대중.

8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GSOMIA)를 파기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강제징용배상판결이 있은 후, 일본이 반도체 일부 품목 수출규제와 한국기업을 수출우대국에서 제외하는 등 경제보복에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전 국민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강도 높은 조치이다.

상호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지소미아 연장은 무의미 해졌고, 지소미아를 파기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잃었던 주도권을 가져왔다. 한편, 한.미.일 동맹체계는 어떻게 될지 불확실한 상황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경제문제를 넘어 미.중.일.러 4대강국의 군사적 긴장으로 남.북 간의 군사적 위기가 초래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목포는 120여 년 전 개항된 이후 일제강점기하에서 경제호황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한반도 전체에서 3 대항 6대 도시가 되었다. 당시 수출중심 항구로 번영하던 목포항은 광복 후 일본을 중심으로 한 생산구조, 무역구조가 단절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새로운 생산체계를 확립하려는 노력을 시도했지만 목포의 산업은 전반적으로 쇠퇴했다. 한국전쟁기 원조경제체제 아래 서울, 영남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목포는 물론 호남 전체가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갔다.

이러한 까닭에 목포의 전성기에 히트한 가요 ‘목포의 눈물’이 더 애잔하게 다가온다. 문병란 시인은 목포를 “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와서 동백꽃처럼 타오르다 슬프게 시들어버린 곳 항상 술 마시고 싶은 곳이다”라고 신랄하게 노래했다. 식민과 근대, 그 혼돈 속에 살다가 일제가 소멸한 뒤 그 뒤안길에 남겨져버린 목포사람들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러나, 운명처럼 목포는 일제강점기 때 지은 건물이 많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의 건축물은 근대 건축물의 산실로, 일본인 구역이었던 유달산 아래 목포여자중학교 근방과 구시가지로 눈에 띄는 건물이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대표하는 문화재급으로 오래된 건축물이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보존하려고 해서 보존된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이 그 이후로 거의 개발되지 않아서이다. 2018년 문화재청은 이 지역 근대역사문화공간을 문화재로 지정하였다. 목포시는 이 곳 보존가치가 높은 건물들은 문화재로 등록하고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 근대역사문화공간을 찾는 관광객이 다섯 배로 늘어나는 등 붐을 이루고 있다.

목포에서 바라보이는 고하도에는 여러 개의 동굴들이 확연하게 보인다. 이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미군을 막겠다며 군수물자나 군인들을 폭격 등으로 방어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다. 현재까지 슬픈 역사의 상징이 그 모습 그대로 보존뙈 있다.

이런 방공호는 근대역사문화관(구 일본영사관), 유달초등학교 뒤편 등 여러 군데 있다. ‘다우치 치츠코’라는 일본 여성(한국 이름 윤학자)이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남편과 함께 공생원이라는 고아원을 세우고, 해방 후 1968년 타계할 때 까지 평생 고아들을 돌보며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이 공생원은 호남 최초의 사립 복지시설이었고, 후손들에 의해 지금도 운영되고 있어 인도주의 표상으로 목포시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목포 역사의 대부분은 100여 년 간 근대화의 역사이다. 그러다 보니 그 중심에 일본이 있다. 일제의 탄압과 수탈의 역사, 그리고 일본인들과 같이 살아야 했던 목포사람들 실존의 역사가 함께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아직까지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친일파들을 단죄하지 못한 역사를 한탄하면서도 이제는 일본과 평화롭게 살기를 바란다. 목포 사람들은 더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아베정권의 경제침략에 분개하고 일본 관광 중단과 불매운동에 동참하면서도 선량한 일본 시민들에 대한 믿음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제의 한국침략, 강제징용, 위안부 피해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며 시위에 함께 참여하는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에게는 감사와 연대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100세를 맞이한 김형석 철학교수는 21세기는 열린사회를 지향하는 나라가 지배하는 세계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앞으로 고립되어 사라질 세 세력으로 폐쇄적인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일본 아베정권과 북한과 같은 폐쇄적인 공산주의, 그리고 종교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유대교와 이슬람교 같은 극단적 종교주의를 들었다. 그러면서 또 다시 한국 침략을 시도하는 아베에게 1919년 3.1운동 때 선포한 도덕주의, 인권주의, 평등주의를 담고 있는 기미독립선언서를 보내자고 제안하였다.

필자는 이 시기에 기미독립선언문 공약 1장도 새겨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우리들의 이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번영을 찾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고,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최근 충남 천안에서 한 일식집이 개업한지 3개월 만에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문을 닫았다는 기사를 봤다. 3억 원의 투자비는 날리고 10여 명의 종업원은 뿔뿔이 흩어졌다는 것이다. 일본음식이 한국에 뿌리 내린 지는 족히 한 세기가 지났을 것이다. 지금의 ‘일식’은 일본음식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한국음식에 가깝다. 더 구체적으로는 한국인 조리사와 고객이 이 땅에서 함께 구축해온 일본풍의 한국 음식이다.

만약 이렇게 긴 시간을 통해 뿌리 내린 한국음식이 한.미 간, 한.중 간 무역 분쟁이나 정치적 갈등으로 미국이나 중국 현지에서 외면 받는다면 이를 지켜보는 우리의 심정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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