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신서의 교육이야기] 또 다른 5월! 30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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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신서의 교육이야기] 또 다른 5월! 30년의 기억!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5.2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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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신서 전남도교육청 정책자문관

[목포시민신문] 1991426일 명지대 강경대 학생이 시위도중 백골단(경찰조직 중 시위 전문 진압대)에 의해 숨졌다. 3일 뒤인 전남대에서 열린 학내 집회에서 노태우 정권 타도, 미국 놈 몰아내자를 외치면서 가정대 박승희 학생이 분신했다. 시위로 대학생이 경찰의 곤봉에 맞아 죽어도 아무 일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사회의 일상들이 순수한 가슴으로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이틀 전에 유서를 써놓고 평범하게 일상들을 보내면서 자신을 정리했음이 나중에야 알게 됐다. 20일간의 전남대 병원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519일 젊은 삶을 마감했다.

세월은 물같이 바람같이 흘러 30년의 시간이 지났다. 지금도 21살의 나이로 머물러 있는 박승희의 친구들은 이제 50을 넘긴 중장년의 나이로 접어들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말에 이르도록 박승희 학생이 유서에서 밝힌 자주적인 국가, 통일조국, 민주주의는 어느 것 하나 이루어지지 못하고 심지어는 물꼬조차 틀지 못하고 있다.

박승희 학생은 목포 정명여고에서 내가 담임을 했던 나의 제자이다. 부모의 가슴에 묻힌 자식만큼은 아니더라도 내 삶속에 늘 옹이처럼, 생채기처럼 날 구속하고 날 견인한다. 글의 내용들이 지금의 시대에 어색할 수도 있고 글 형식으로도 온전하지 않지만 30년 전 30대 중반의 젊은 해직교사의 시대와 현장의 발언을 그대로 전한다.

산자와 죽은 자의 대화인 기억을 하고 기록을 남기기 위함이다.

더 이상 부모가 자식의 상주가 되는 세상, 선생이 제자의 주검 앞에 조사를 토해내는 세상이 오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조 사 (弔 辭)

(1991525겨레의 딸, 자주의 불꽃 전남대 박승희 열사의 전남대 5.18광장 노제에서)

 

우리들의 딸,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친구, 우리들의 제자!

그 치열한, 그 타오르는 신열을 우리는 열사라 부른다

산자여 대답하라 살아있는 자여 그 부끄러운 가슴으로 응답하라!

우리가 소리쳐 불렀던 민족해방, 통일조국, 아 그리고

저 살인정권, 노태우 정권 타도는 어찌됐는가?

 

우리들의 무관심이 이 땅의 대학생이 맞아 죽어도 일상의 삶으로 만들고 있을 때

한 젊은이의 죽음을 단지 돌덩어리로

쇠파이프 타살에 대한 애도로만 머물고 있을 때

우리들의 이기심이 사람들을 짐승으로

폭력 앞에 바르르 떠는 그 어쩔 수 없음으로 돌리고 있을 때

! 우리들의 꽃, 우리들의 딸이 그 스무 살도 채 안된 젊은

그 성처녀의 몸을 민주의 제단에 바칠 준비를 하는 동안

그대들, 그날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자신 있게 응답하라

 

산자여! 대답하라!

불속보다 더 뜨거운 가슴으로, 함께 하길 요구하면서 반미투쟁을 선언한

슬퍼하지 말고 손에 손잡고 싸워나가는 전사임을 일깨운 승희 앞에서

손에 손잡고 하나 될 수 있는가? 이 땅의 전사로 바로 서겠는가?

아니 반미 해방 전사의 이름으로 그대의 가슴과 그대의 피 사를 수 있는가?

 

우리들의 딸, 우리들의 전사, 우리들의 아가다, 나의 사랑하고 사랑하는 제자!

이제 가라 구천을 헤매지 말고 편히 가라

싸움은 살아있는 이 부끄러운 자들의 것

이 부끄러움을, 이 못다 함을 다할 수 있게 남겨두고 가라

네가 그토록 사랑한 아빠, 엄마, 선생님, 교수님, 용편(용봉편집실)의 식구들,

은아, 민선, 지숙, 민재, 주현, 은희 언니, 가정대 학우들. 송갑석 의장,

아니 광주의 모든, 이 한반도 모든 이의 가슴에 남기고 가라.

 

못난이 승희 가라! 편안함으로 가라!

더 이상 부모가 자식의 상주가 아니 되는 땅

스승이 제자의 시신 앞에 절하고 조사를 토하지 아니하는 땅

학우가 친구가 피울음을 토하지 아니하는 이 땅을 위해서

산 자의 살아있는 자의 지치지 않는 비타협적인 싸움의 장으로

남기고 편안함으로 가라.

우리는 앞으로 그대를 이렇게 부른다.

우리 조국의 딸, 7천만 가슴에 투쟁의 신심을 심어준 겨레의 딸로 부른다.

미제 침략 오욕의 역사, 식민지 조국에 해방 조국을 새길 자주의 불으로 부른다.

 

겨레의 딸, 자주의 불꽃, 여성전사 박승희 열사!

그대가 거닐었던 목포정명여고, 목포의 앞바다, 유달산, 용봉편집실,

전남대5.18 광장, 전대연못, 휴게실, 상대 뒤, 가정 대 강의실,

금남로, 충장로, 무등산, 법정, 이 모든 거리에

불꽃으로 탈 코스모스 씨를 뿌리겠습니다

 

병동에서 그 시커먼 숯 덩어리로 남아, 그러나

의식은 무섭게 살아서 마지막 토로를, 스승의 날에 마지막 선물을,

친구들에게 마지막 사랑을, 병실을 찾는 모든 이에게 그 힘찬 투쟁의 모습을 남긴

열사의 뜻이어 산자의 무서운, 끈질긴 투쟁의 6월을 맞이하겠습니다.

 

저 간악한 노태우 정권이 타도될 때까지, 처단될 때까지,

아니 그 목을 장대에 걸어 도청 분수대에 세울 때까지

통일조국, 반미구국의 90년대를 안아올 힘찬 출정식을

우리는 그대의 장례식으로 결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코스모스 피울 때, 지천으로 피어 웃고 있을 때,

승리의 꽃다발을 부모님에게 안겨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야기하겠습니다.

먼 훗날에도

남도의 여성 전사, 그 성처녀 아가다. 그 불꽃의 화신이 외쳤던

그 피의, 그 불의, 그 뜨거운 선언을 우리는 쟁취하였다고.

(1991. 5.25. 광주전남대책위. 구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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