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영의 희망편지] 닳아진 내 영혼이 죽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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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의 희망편지] 닳아진 내 영혼이 죽던 순간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11.1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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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하며 살아가는 하루 속에는 타오르는 꿈과 굶주린 열망이 녹아 있었다. 누군가는 열심히 사는 모습에 부러움을 표하기도 했지만, 그다지 부러울만한 일도 아니었다. 최선을 다한 시간에는 쉽게 놓을 수 없는 욕심이 쥐어 있었다. 그 끝없는 욕망의 길에는 선택의 갈림길이 들어차 있었다. 어찌나 수두룩 빽빽이던지. 어쩌면 그건 길이 아니라 숲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갈 수 있는 곳은 많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그 우거진 숲길에서 나는 한참을 헤맸다.

저물어가는 20대의 해에서 나는 그저 나이 먹기 싫어 몸서리치지만은 않았다. 글을 쓰는 일에는 인생을 넓게 바라볼 수 있는 깊은 통찰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이'라는 핑계가 있어야, 이 실패의 원흉이 자신이라고 자책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끝없이 무언가에 도전하고 무너졌지만, 분명 그 속에 소소한 성공도 있었다. 그러나 그 잠깐의 성취가 끝없이 펼쳐진 욕망의 바다를 그득 채울 수는 없었다. 더 강하고, 더 커다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온 몸과 마음을 수없이 내던졌다. 수영도 할 줄 몰랐던 영혼은 욕망의 바다에서 그저 허우적거렸다.

아마 모든 이의 이십 대가 그러했으리라. 갈 곳을 몰라 헤매고, 혼자 온갖 짜증과 울분을 토해내면서도 끝내 법을 찾지 못했다. 누구도 모를 제 인생의 해답을 기성세대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대로 있다간 죽을 것 같은데요. 괜찮아, 시간 지나면 다 나아져. 이미 자신과의 갈등을 겪은 세대들은 그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로 청춘들을 위로했다. 그 말은 무척이나 잔혹한 말이었다. 이 지옥 같은 순간들을 그저 견디라고만 해서.

내 영혼이 깎여가고 있는 것을 느꼈던 때는, 생각보다 오래 지나지 않았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열심히만 살아온 날들. 이십 대의 막바지에 접어들자, 상처들은 아물 새도 없이 빠르게 곪아갔다. 부끄럽고 미천한 감정의 바닥이 그대로 드러났다. 때로는 입에 담기도 무서울 생각들을 수없이 떠올리곤 했다. 악몽 같은 새벽이 줄을 이었다.

명상이나 글쓰기 같은 것들이 생각을 크게 전환시켜줄 수 없었다. 그건 언제나 반복적으로 해오던 것으로, 잠깐의 스트레스나 걱정들을 해소해줄 뿐이었다. 점점 말라 가는 몸과 피폐해지는 정신으로 침대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동안 수없이 펼쳐 놓았던 삶의 방향에 대한 걱정과 고민들이 아득히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이렇게 사는 게 의미가 있나, 사는 게 지옥 같다. 한숨이 습관처럼 뱉어져 나왔다.

겨우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았다. 꺼진 모니터의 시커먼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거울을 바라보자, 꼽추처럼 몸을 구부린 내 모습이 보였다. 턱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과 수척해 보이는 광대는 이미 체력의 한계를 비추고 있었다. 영혼에도 색깔이 있다면, 아마 그때의 내 영혼의 색깔은 회색빛이었을 테다.

몸도 마음도 새것처럼 가뿐해지고 싶었다. 병원을 가서 진료를 받은들, 해결될 일 같지는 않았다. 나는 이불을 털어 곱게 개어놓고, 옷을 갈아입었다. 긴 머리는 가지런히 말총머리로 묶었다. 세수를 하고 마스크를 끼고 겉옷을 입었다.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공원을 걸었다. 새 지저귀는 소리와 낙엽 밟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았다. 몸풀기로 가볍게 공원 한 바퀴를 걸은 후, 있는 힘껏 달리기를 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목구멍에서 피 맛이 날 정도로 힘차게. 오랜만의 달리기라 공원을 많이 뛰지는 못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뛰고 나자, 나는 산책로 위에 몸을 뒹굴었다. 헉헉거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청명한 가을 하늘과 살짝 쌀쌀한 공기가 목구멍에 그득 차올랐다. 달리기가 너무 힘들어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혈관을 타고 박하사탕의 화한 기운 같은 시원함이 돌았다.

숨이 차서 죽을 것만 같은, 개운한 고통을 받고 나자 회색빛이었던 나의 영혼이 새하얗게 정화되는 듯했다. 그렇게 나의 죽어가던 세계도 빨래를 한 듯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야 나는 비로소 환히 웃을 수 있었다. 나는 한참 그 길에 드러누운 채, 힘찬 달리기로 거칠어진 숨을 가지런히 내뱉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리기를 마쳤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집으로 돌아가서는 방향을 찾지 못해 또다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마치 병들어있던 나의 세계가 지우개로 지워진 것처럼 개운해졌다. 그 개운함은 회색빛이었던 나의 하루들이 깨끗하고 맑아질 수 있었다. 한동안은 이 힘으로 버텨낼 수 있을 테다.

가끔 한 번씩, 내 영혼이 닭아져있을 때마다 이 공원을 찾아야겠다.

닳아진 내 영혼이 죽는 순간, 나는 또다시 하얗게 태어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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